일상 148

까비

2001년 봄날 파리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쯤의 거리에 있는 Moret sur Loing이라는 유서깊고 아름다운 마을 강변 메종에서 태어난 예쁜 고양이. 그해 8월 초에 우리집으로 데려와 까비라는 이름으로 은비네 가족이 된 까비. 세 살 되면서는 병원 의사의 중매로 자기를 똑닮은 두 아기를 낳았고 그후 동네 냥이와의 사이에서 또 세 번 더 아기를... 사진 속 낯선 냥이는 미에뜨라는 이름의, 두번째 출산으로 태어난 까비 딸. 미예뜨를 입양한 엄마는 자주 미예뜨의 사진을 보내온다. 까비가 떠났다는 소식에 보내온 최근 사진. 까비 19년 2개월이란 시간 동안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었던가. 우아하고 얌전한 까비, 19년 5개월여를 지구별에서 사랑스럽게 살았다. 까비에게 주던 내사랑 까비가 내게 주던 기쁨과..

일상 2020.11.19

11월, 산책 첫날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 중 체로키족은 11월을 '산책하기 알맞는 달'이라 부른다지. 그래서는 아니었지만, 오늘 아침나절 햇빛이 좋아 동네 한바퀴 산책하기엔 딱 좋은 조건이었다. 하늘은 말끔하게 닦아 둔 파아란 유리잔을 보는듯, 온갖 색채의 나무잎의 어울림은 잘 그려 둔 수채화, 살랑바람에 우수수 날리는 낙엽들은 긴 여행길에 오르는 설레는 마음인듯. 길가에 핀 철늦은 칸나 고향집 내 어린날의 뜰과 엄마를 그립게하고... 무엇보다 좋은 건 온몸을 감싸는 따끈한 햇볕.

일상 2020.11.02

그래도

아흔일곱 노모를 모시고 일흔일곱 첫딸은 막내 아우와 함께 병원엘 갔더란다. 의사에게 아우가 말했단다. 엄마가 이상해요. 의사가 일흔일곱 살 딸 손을 잡으며 어디가 어떻게 불편하세요? 일흔일곱 첫딸은 자신을 너무 늙게 봐준 의사에게 벌금을 내라고 마구 때썼단다. 억울해서 못살겠으니 벌금이라도 받아야겠다고. 의사는 박장대소로 헛소리와 민망함을 유쾌히 씻더란다. 이 의사양반 어쩜 이리도 멋드러지게 웃어재끼는지 이것으로 벌금 충분하다 했단다. 셀폰너머 들려오는 일흔일곱 젊은 노인 내 동무, 내게 말한다. 내가 이렇게 억울한 대접을 받고 살고 있으면서도 웃고 있으니... 그래도... 좋구나. *** 고향 동무, 내 친구 노모께서 치매가 시작되셨단다. 無男多女 딸부자집 첫째딸, 아래로 둘은 독일 가 살고 저 아래 ..

일상 2020.10.30

가을 날 오후 햇살은 눈부셨네

오후 세 시 즈음 집을 나서니 바람 타고 춤추는 가을잎새들... 예쁘다. 햇볕이 달구어둔 바위에 걸터앉아 엉덩이 지지기. ㅎㅎ 따끈 따끈 따끈... 차암 좋다. 요즘 내가 즐기는 놀이 가을이 선물하는 많은 것들과 이야기 나누고 바라보고 젖어들어 취하기 차암 고맙다, 가을. *** 2020. 10. 17 오후 3시 즈음부터 4시까지의 사진 햇살 밝아 단풍색이 흐릿하게 나왔군. 흐음~ 첫사진 나무랑 끝사진 나무는 내집앞길의 같은 나무.ㅎㅎ

일상 2020.10.17

이정록 詩 한 편 그리고.. 잡담

세수 빨랫줄처럼 안마당을 가로질러 꽃밭 옆에서 세수를 합니다. 할머니는 먼저 마른 개밥 그릇에 물 한 모금 덜어주고 골진 얼굴 뽀득뽀득 닦습니다 수건 대신 치마 걷어올려 마지막으로 눈물 찍어냅니다 이름도 뻔한 꽃들 그 세숫물 먹고 이름을 색칠하고 자두나무는 떫은 맛을 채워갑니다 얼마큼 맑게 살아야 내 땟국물로 하늘 가까이 푸른 열매를 매달고 땅위, 꽃그늘을 적실 수 있을까요 ??? 큰딸, '수채화' 끄적인다더니 가끔 가족단톡방에 올려 준다. 그림 참 맑다. 그 애 심성처럼. 작은딸, 코로나-19가 가져온 늘어진 시간들을 '작심 열공' 한다더니, 오호호 신통방통 라이센스 따냈다. 것두 국가공인 자격증을. 장해! 그런데 작은사위, 뭔 시험을 보러 가더니 곧 되돌아 왔더란다. 이유가 참 기차다. 준비할 서류를..

일상 2020.08.25

낯선 그러나 곧 익숙할지도

코로나 이후 전철 탈 때마다 느끼는데 동냥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고 스타일이 아주 다양해졌어. 어제 귀가 길엔 어떤 30대 후반- 40대 초반 정도의 여자가 멀쩡히 차려 입고(원피스) 전철에 타자 마자 높은 소리로 울부짖으며 구걸을 시작하는데, 그 내용이 ‘나는 톨비악에 살며 일을 하는데 한 달 수입이 900€다. 그 중 550€은 집세로 나가고 전기세와 기타 세금이 200€, 그러니 생활비로 150€ 남는다. 그돈으로 아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러니 나를 홀로 두지 말고 제발 도와달라’야. 내용은 너무 구체적이고 명확한데 그 구걸 스타일이 낯설어서 그런지 선뜻 돈을 안꺼내게 되더라고. 내용은 구걸인데 형식이 협박조랄까.. 아님 너무 리얼해서 거부감이 들었나. 여하튼 코로나 이후에 무척 특이한 동냥 형..

일상 2020.08.04

마농네 시골집에서

은비는 며칠 전 어릴적부터 자매처럼 지내는 친구 마농네 시골집엘 갔단다.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마을에 마농 아빠가 농가를 마련해 두었다더니 그곳엘 갔나보다. 가족 단톡방에 매일 전송되는 시골풍경 사진들은 우리들을 어찌나 즐겁게 하는지... 여러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는 우리는 모두 입모아 '왕부럽이다'를 연발. 그중 수탉과 고양이가 있는 정경은 라퐁텐의 우화를 사진으로 동화를 쓰고.ㅎ 동화속 이야기처럼 평화로운 전원의 풍경은 '역시 프랑스 시골은 최고의 낙원이야 '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게 하는군. 흐음~~

일상 2020.08.02

답글

차암 좋은 '우리 동네 도서관' 그 도서관의 차암 친절한 직원들. 듣는 이도 기분 좋아지게 하네요.^^ 요아래에서도 Olav Hauge 시인의 시를 소개해 주셨는데, 앞으로 우리도 열세 편의 시를 어쩌면 더 감상할 수 있을까요? ㅎ 좋은 시, 읽게 해주셨으니 답례로 아침 풍경에 대한 시를 옮겨 드릴게요.^^ ? 메아리 / 마종기 작은 호수가 노래하는 거 너 들어봤니. 피곤한 마음은 그냥 더 잠자게 하고 새벽숲의 잡풀처럼 귀 기울이면 진한 안개 속에 몸을 숨긴 채 물이 노래하는 거 들어봤니? 긴 피리 소리 같기도 하고 첼로 소리인지 아코디언 소리인지 멀리서 오는 밝고 얇은 소리에 새벽 안개가 천천히 일어나 잠 깨라고 수면에서 흔들거린다. 아, 안개가 일어나 춤을 춘다. 사람같은 형상으로 춤을 추면서 안개가..

일상 2020.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