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353

로저 페더러! 함께한 시간, 즐거웠어요

지난 23일 저녁 이곳 TV 뉴스에서 페더러의 은퇴 소식을 듣고서 순간 가슴이 철렁. 그리고는 눈물이 핑그르르~ 아, 그도 무대 뒤로 가버리는구나. 사뭇 우울하고 왠지 쓸쓸해지는 마음은 쉽게 털어내어지지 않는다. 인터넷을 뒤적였다. 이미 몇 주 전부터 그의 은퇴 소식을 모두들 전해 들었구나. 사라포바도 몽피스도 치치파스도 윌리암스도 그리고... 나달도 페더러와 함께한 레이버 컵에서 나달은 또.. 그리도 눈물짓고. 엊그제 레이버 컵 경기에선 두 라이벌은 한조가 되어 복식경기를 보여줬다. 페더러의 마지막 경기. 이젠 해마다 기다리고 응원하고 환호하던 그랜드슬램이나 투어대회에서 페더러의 경기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 앞에 난 왜 이리도 쓸쓸할까. 2022년 LAVER CUP 대회에서 마지막 경기를 보여주는 ..

살며 사랑하며 2022.09.26

접시꽃 당신

접시꽃 당신 - 도 종 환 -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 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 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덩을 덮은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 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 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접시꽃 당신은 벌레 한 마리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살며 사랑하며 2021.06.20

<물푸레나무가 때죽나무에게> 염명순

이곳엔 슬픔만 울창하여 내가 너에게 자리를 물려주나니 우리 떠난 자리에 강한 산성비는 다시 내려도 너는 자라지 않는 사랑의 낮은 키로 척박한 땅에 뿌리내릴 것이라 향긋한 숲의 향기를 이끌고 떠날 곳을 찾지 못한 마음만 자꾸 산중턱에 감기고 다시 비가 오면 메마를 뿌리 거두지 못한 채 산성의 슬픔은 진달래 철쭉의 붉은 위험신호로 깜박이는데 섬뜩한 예감의 핵우산을 쓰고 잿빛 하늘을 나는 아이들의 꿈은 아황산가스로 덮인다 밤마다 벌목꾼의 시퍼런 도끼날 아래에서 베어넘겨지던 창창한 꿈과 수액의 아픔이 온 산을 울리던 시절에도 나뭇잎이 받쳐드는 햇살만큼은 싱그러웠던 아름드리나무의 숲 전설처럼 전해질 때 낮게 포복하며 황폐한 산자락을 움켜쥔 덤불의 산야에서 너 또한 어느 시름겨운 잡초에게 이 산을 넘겨주리니 이곳에..

살며 사랑하며 2021.05.19

詩集 <꿈을 불어로 꾼 날은 슬프다>

멀리 파리에 사는 시인 염명순 님의 시집 '꿈을 불어로 꾼 날은 슬프다'가 올해 복간 되었지요. 시인의 詩는 내가 블로깅을 제법 열심히 할 때 몇편을 이 블로그에 올려둔 시도 있다우. 출판사 '문학동네'의 복간 기획의 말을 빌면 '............. 한때 우리를 벅차게 했으나 이제는 읽을 수 없게 된 옛날의 시집을 되살리는 작업 또한 그 그리움의 일이다. 어떤 시집이 빠져 있는 한, 우리의 시는 충분해질 수 없다. 더 나아가 옛 시집을 복간하는 일은 한국 시문학사의 역동성이 드러나는 장을 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나의 새로운 예술작품이 창조될 때 일어나는 일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예술작품에도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 시인 엘리엇의 오래된 말이다. 과거가 이룩해 놓은 질서는 현재의 성취에 영향받아 ..

살며 사랑하며 2021.05.08

2020 US 오픈 테니스

코비드-19 시대의 그랜드 슬램 대회. 얼마전 코로나가 창궐하여 주검을 매장하던 무서운 장면의 뉴욕에서 개최된 2020 US OPEN TENNIS. 무관중의 텅빈 경기장으로 입장하는 선수들은 물론 심판도 볼보이도 코치들도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 진풍경. 그래도 그게 어디야. 대회를 개최한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 열일곱 살 풋풋한 신예 선수의 등장도 싱그럽고, 테니스 경기장의 터줏대감인 빅3가 없는, 차세대들의 행진도 볼 만한 대회였다. 결승전에서의 드라마같은 경기 내용은 또 어떻고! 와우~ 4시간을 넘긴 엎치락뒤치락. (핑크빛 경기복의)핑크보이 들은 라켓 비쥬를 무시하고 손을 맞잡더니 기어이 얼싸안 았다. 역경을 헤쳐나온 동지처럼, 적진에서 빠져나온 전우 처럼. 도미니크 팀을 응원하던 나는 알렉산더 츠베레..

살며 사랑하며 2020.09.15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델리아 오언스

연일 장맛비로 축축하더니 뒤이어 달려드는 태풍은 소나기를 쏟아 붓는다. 거기에 보태어, 아들이 보내준 책은 습지에서의 이야기 이고보니 한동안이 눅진하고 축축한 날이었다. Delia Owens 평생 야생동물을 연구해온 델리아 오언스는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 첫 소설을 출간 했다지. 이 책은 입소문을 타고 30주가 넘도록 판매 순위 1위. 밀리언셀러에 등극했다는데. 미국 남부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뱅크의 해안 습지를 배경으로 한, 여섯살짜리 카야라는 홀홀단신 소녀가 예순이 넘을 때까지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로 펼쳐진다. 페이지가 마구마구 넘어가는 건 재미있어서지만 455페이지의 분량을 프롤로그까지 합쳐서 58번의 소제목 으로 나뉘어 써나가니, 편하게 읽히는 큰 이유라고 생각했다. 성장소설, 러브스..

살며 사랑하며 2020.09.03

시 옮기기 마지막 페이지

귀뚜라미 깊은 밤 고다쓰 안에서 시를 쓴다 '나 사실은' 이라고 한 줄 쓰고 눈물이 흘렀다 어딘가에서 귀뚜라미가 운다 '울보랑은 안 놀아' 귀뚤귀뚤 운다 귀뚤귀뚤 귀뚜라미야 내일도 오렴 내일은 웃는 얼굴로 기다리고 있을게 *** 연하장 잘 있는 것 같으니까 뭐 됐어 중얼거리며 몇 번이고 아들이 보낸 연하장을 본다 새해 아침이 되면 아버지 생각이 나요 만나면 싸우는 부자였지만 그리웠던 거야 당신이 *** 행래교(幸來橋) 더부살이하던 집에서 괴롭혀 행래교 옆에서 울고 있으면 친구가 힘내자, 웃으며 말해 주었지 졸졸 흐르는 냇물 푸르른 하늘 하얀 구름 행복이 찾아온다는 다리 상냥한 친구 힘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팔십 년 전의 나 *** 비밀 나,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 하지만 ..

살며 사랑하며 2020.06.06

시바타 도요

추억 2 아이와 손을 잡고 당신의 귀가를 기다리던 역 많은 사람들 틈에서 당신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죠 셋이서 돌아오는 골목길에는 달콤한 물푸레나무 향기 어느 집에선가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노래 그 역의 그 골목길은 지금도 잘 있을까 *** 아침은 올 거야 홀로 살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강한 여성이 되었어 참 많은 이들이 손을 내밀어 주었지 순수하게 기대는 것도 용기라는 걸 깨달았어 "나는 불행해....." 한숨짓는 네게도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따뜻한 아침 햇살이 비출 거야 *** 두 시간 있으면 세상에는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사건이 있어 콜롬보 경감 후루하타 닌자부로 경감 둘이서 힘을 모으면 범인은 꼭 잡힐거야 두 시간 있으면 *** 횡재한 기분 고다쓰 안에서 TV를 보며 웃고 있는 아들 옆모습 젊은 시..

살며 사랑하며 2020.06.06

시바타 도요

기일에 당신 꿈을 꾸었어요 아들에게 말했더니 자기도 보고 싶다고 그러네요 부자가 참 많이도 다투곤 했지요 난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기만 했어요 지금은 상냥하게 대해 줍니다 둘이서 시를 짓고 있어요 당신도 함께하지 않을래요? *** 나 2 침대 머리맡에 항상 놓아두는 것 작은 라디오, 약봉지 시를 쓰기 위한 노트와 연필 벽에는 달력 날짜 아래 찾아와 주는 도우미의 이름과 시간 빨간 동그라미는 아들 내외가 오는 날입니다 혼자 산 지 열여덟 해 나는 잘 살고 있습니다 *** 선풍기 방향을 바꿔 두드리지 않으면 돌지 않는 선풍기 달그락 달그락 힘에 겨운 소리 고민 끝에 내일 새것으로 바꾸기로 했다 사십 년 동안 부드러운 바람 보내 줘 고마워 푹 쉬렴 *** 전화 힘겹게 일어나 전화를 받으면 물건을 구입하라는 ..

살며 사랑하며 2020.06.05

시바타 도요 詩

하늘 외로워지면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족 같은 구름 지도 같은 구름 술래잡기에 한창인 구름도 있다 모두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해질녘 붉게 물든 구름 깊은 밤 하늘 가득한 별 너도 하늘을 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 행복 이번 주는 간호사가 목욕을 도와주었습니다 아들의 감기가 나아 둘이서 카레를 먹었습니다 며느리가 치과에 데리고 가 주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날의 연속인가요 손거울 속의 나 환히 빛이 납니다 *** 화장 아들이 초등학생 때 너희 엄마 참 예쁘시다 친구가 말했다고 기쁜 듯 얘기했던 적이 있어 그 후로 정성껏 아흔일곱 지금도 화장을 하지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 대구지방은 30도를 훌쩍 넘는 한여름 더위가 예고되었다. 성급한 여름 더위. 기온도 뜨겁고, 대한민국은 코로나바이러스..

살며 사랑하며 2020.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