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344

추억하기

도서관에서 김승옥에 빠져있다가, 졸음이 살살 밀려 들기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시립 도서관 근처에 있는 모교를 향해 천천히 걸었지요. 머릿속으로 계산해 보니, 이 교정을 떠난지 52년이 흘렀습니다. 校舍는 물론 주변 모두가 너무도 많이 변했고, 강당은 체육관이란 이름으로 그 모습 또한 달라 졌습니다. 너른 운동장 앞의 구령대를 바라봅니다. 6학년 때, 전교 어린이 부회장으로 출마해서 단상에 올라 정견발표/그때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회장후보, 여자는 부회장후보로만 출마. 호랑이 담배필 적 얘깁니다/를 하던 내 모습을 떠 올립니다. 낙선을 했지만, 좋은 추억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같은 학년이었는데, 나는 그때 그런 전도유망前途有望한 학생이 옆반에 있는 줄도 몰랐지요.ㅋㅋ..

오두막 편지 2008.11.23

사랑이가...

서산으로 해가 진다. 붉은 해가 투명한 오랜지빛으로 산을 넘는다. 호수 건너편 먼 동네에서는 보석같이 반짝이는 불빛이 싸늘한 늦가을 한기에 젖어 더욱 냉냉한 푸른빛이다. 보여지는 모든 것들이 차다는 느낌으로 스며드는 저녁이다. 과수원 높은 언덕에 서서 '사랑이'의 흔적을 찾는다. 어제부터 보이지 않는 사랑이를 오늘도 온 과수원을 돌며 사랑아 사랑아 부르며 찾다가 높은 곳에 서 있으면 나를 보고 달려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언덕에 서서 기다린다. 해가 지고, 능선위로 붉게 물들었던 황혼도 잠시... 사위가 어두워온다. 아직도 사랑이의 기척은 없는데.... 불길한 생각에 자리를 뜰 수가 없다. 며칠째 비실비실 잘 먹지도 않고 졸고 있던 사랑이가 혹시라도 죽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후회가 몰려 오기도 한다...

오두막 편지 2008.11.16

作名

은비오두막에 나그네 개가 들어와서 이제는 터줏대감이 되었다. 업둥이도 아니고, 초대받은 손님도 아닌 지나가던 개 한마리가 이곳이 좋아서 눌러 살고 있단다.-지금은 여섯마리로 늘어 난 三代가 산다.- 내 둘째 남동생의 예쁜 아내가 얘기 하길, 전에도 이곳에 터를 잡고 살던 개가 있었는데 지금의 이 누렁이가 들어와서는 그 개를 쫓아 냈다고 한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거지요.'라고 말했다.ㅋㅋㅋ 내가 이 오두막으로 이사를 온 이후엔 이집 터줏대감 누렁이가 나를 얼마나 잘 따르는지... 이 개는 사람의 손길과 사랑을 알고 자란 녀석인 것같다. 어쩌다가 버림을 받은건지, 아니면 미아가 된건지, 가엾다는 마음에서 먹을 것도 나누어 먹고, 쓰다듬어 주고, 벌렁 누우면 배도 만져 주고 하니까 더욱 잘 따른다...

오두막 편지 2008.11.13

김장

언니가 김장을 한댄다. 형부랑 배추밭으로 배추를 사러 갔다. 시장에서는 한포기에 500원쯤 하는 걸, 1000원씩이나 주고 사왔다. 차를 가지고 가서 직접 운송까지 해 왔으니, 정말 비싼 배추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착하게 대하는 언니가, 절친하게 지내는 이웃사촌에게 시장가격보다도 더 비싼 배추를 샀으니, 형부는 바가지를 또 썼다고 잔소리를 하신다. 그래도 언니는 한치의 서운함이나 억울함도 없는 눈치다. 그냥 나누어 먹어도 좋을 배추를 곱으로 값을 치뤘으니, 내가 생각해도 좀 야박하다 싶은데 우리 언니는 어쩜 그리도 너그러울까? '그래도 농사 짓는 사람보다 우리가 더 이익이예요. 염천에 뙤약볕 아래서 밭매고 채소 기르려면 이 값도 안받아서 되겠어요?' 언니의 그 말에 형부도 아무말 안한다. 어찌어찌 그렇..

오두막 편지 2008.11.12

또 하나의 섬

은비오두막에 유선방송으로 연결된 TV라도 설치해서 볼까하고 지방방송국에 신청을 했습니다. 상담을 해 주는 친절하고 살가운 아가씨는 인터넷 연결도 권했습니다. 옳다구나 됐다!! 좋아라 YES!! 했지요. 다음날 약속된 시간에 유선방송 시청 시설을 해 주러 남자 직원이 왔습니다. 오두막 터줏마님? '아가'-이름이 없어서 오두막 개를 내가 그냥 이렇게 부르고 있지요.-에게 혼줄이 났는지, 그 남자 직원은 주인장 허락도 없이 부엌으로 뛰어 들어 왔습니다. 개에게 물린 적이 있다면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발발 떨고 있습니다.ㅋㅋ 이런 작업하고 다니느라면 사납고 못된 개를 더러 만나 봉변을 당하나 봅니다. 그러나 걱정 마세요. 은비오두막 '아가'는 참으로 순하고 사람의 손길을 몹시도 그리워 하는 할머니개니까요. ..

오두막 편지 2008.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