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김장

eunbee~ 2008. 11. 12. 20:10

언니가 김장을 한댄다.

형부랑 배추밭으로 배추를 사러 갔다.

시장에서는 한포기에 500원쯤 하는 걸, 1000원씩이나 주고 사왔다.

차를 가지고 가서 직접 운송까지 해 왔으니, 정말 비싼 배추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착하게 대하는 언니가, 절친하게 지내는 이웃사촌에게

시장가격보다도 더 비싼 배추를 샀으니, 형부는 바가지를 또 썼다고 잔소리를 하신다.

그래도 언니는 한치의 서운함이나 억울함도 없는 눈치다.

그냥 나누어 먹어도 좋을 배추를 곱으로 값을 치뤘으니, 내가 생각해도 좀 야박하다 싶은데

우리 언니는 어쩜 그리도 너그러울까?

'그래도 농사 짓는 사람보다 우리가 더 이익이예요.

염천에 뙤약볕 아래서 밭매고 채소 기르려면 이 값도 안받아서 되겠어요?'

언니의 그 말에 형부도 아무말 안한다.

 

어찌어찌 그렇게 그렇게 실갱이를 하면서

배추 50포기를 실어 왔다.

은비오두막에서 다듬고 절이고 씻기로 했다.

세식구 김장이 왜 이리도 많으냐고 물었더니

세째 올케네 김장까지 해 줄거란다.

워메~~

고 여우같은 올케네 김장까지 해 줄거라구?

그래도 그 올케는 예쁜여우라서 그다지 밉지는 않다.

 

부려놓은 배추를 나는 칼집을 넣어 반으로 쪼개고

언니는 소금에 절이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커다란 배추를 어떻게 반으로 가른대?

그것도 배추 머리부분에 열십자 칼집을 넣어서 손으로 쫙 쪼개야 한댄다.

엉거주춤 서 있었더니, 형부가 시범을 보이신다.

오호라~ 그렇게 하는거구나.

첫 칼질은 어설펐지만, 다음 번 부터는 쫙쫙~ 넘넘 잘 한다.

배우면 남보다 훨씬 잘하는 내 재주!!

안해서 그렇지 뭣하나 꿀릴게 없네. 핫하하하하

 

작은따님에게서 메일이 왔다.

엄마가 이모네 김장을 거든다고 하더니, 배추 절이는 작업은 잘 했냐구

몇십년만에 해 보는 김장인데 즐겁게 잘 하라구...ㅋㅋㅋ

아드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은 예서제서 내 김장 소문으로 바쁘다.

'엄마, 김장은 잘 했어?

몇십년만에 해 보는 거겠네?"

에궁~~ 소문 빠삭하니 다 났다.

예순하고도 4년을 더 산 내가 오랜만에 김장을 한다니, 이사람 저사람 신기하고 걱정되고

반갑고.... 뭐 그런가 보다. 헤헤헤

 

진짜 김장의 하일라이트는 내일이다.

내일은 버무리는 날이니까...

나는 내일이 기다려 진다.

매캐한 고추가루 냄새와 달콤짭짜름한 젓갈냄새가 뒤섞인 향수어린 정경.

내가 사범학교 다닐 때, 학교 갔다 집에 돌아오면, 외사촌언니 외사촌 올케들이 우리집에 대거 몰려 와서

따뜻한 양지바른 우리집 마루에서 즐겁게 버무리던 김장 담는 풍경.

그 언니들은 나에게 '책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한다'고 질투섞인 핀잔을 주었었다.

 

내일은, 볕바른 은비오두막에서

언니와 올케와 정답게 앉아, 엄마 얘기하면서 김장을 담가야지.

 

오늘 배추를 쪼개는 나를 바라보며 언니가 말했다.

'너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거지?'

아무려면 그렇기야 할려구. 으이구~

언니가 또 말한다.

'생활 체험 학습 한다고 생각하고 해' 

하기사 말해 무엇할까...우리엄마가 시집보낸 나에게 오셔서 하신 말씀

'나 죽거든 무덤앞에 와서,'엄마 큰빨래~ 엄마 큰빨래~'라고 말하라구.

그러면 엄마가 벌떡 일어나서 해 주고 가겠다구.

세탁기가 없던 시절, 큰빨래를 못해서 걱정하는 나를 보시고 하신 말씀.

 

그렇게 세월을 살며,

여기 예순넷까지 왔다.

에고고고고고고~~~

 

그러나, 내일은 내가 김장 버무리는 날!!  앗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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