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추억하기

eunbee~ 2008. 11. 23. 18:19

도서관에서 김승옥에 빠져있다가, 졸음이 살살 밀려 들기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시립 도서관 근처에 있는 모교를 향해 천천히 걸었지요.

머릿속으로 계산해 보니, 이 교정을 떠난지 52년이 흘렀습니다.

校舍는 물론 주변 모두가 너무도 많이 변했고, 강당은 체육관이란 이름으로 그 모습 또한 달라 졌습니다.

너른 운동장 앞의 구령대를 바라봅니다.

6학년 때, 전교 어린이 부회장으로 출마해서 단상에 올라 정견발표/그때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회장후보, 여자는 부회장후보로만 출마. 호랑이 담배필 적 얘깁니다/를

하던 내 모습을 떠 올립니다.

낙선을 했지만, 좋은 추억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같은 학년이었는데,

나는 그때 그런 전도유망前途有望한 학생이 옆반에 있는 줄도 몰랐지요.ㅋㅋㅋ

아까워라~ 찜해 둘걸~~하하하

 

체육관이란 이름의 강당앞에 우두커니 섰습니다.

55년 전쯤, 이 건물을 새로 지어서 낙성식을 올린다고 예술제를 가졌습니다.

국민학교 4학년이던 나는 백조왕자라는 무극에서 여러명의 백조중 하나인 백조왕자역을 했고

리어왕에서는, 리어왕을 찾아 들판을 헤매는 충직한 신하역할을 했습니다.

무용선생님의 내레이션과 배경음악이 참으로 멋졌습니다.

한국전쟁 직후이기 때문에, 우리보다 서너살 많은 학생이 함께 동학년으로 다니던 시절이었지요.

5학년 때인지 6학년 때였는지, 충주비료 공장이 가동이 되고

충주에는 임병직외무장관인지 주미한국대사인지를 대동한 미국인이 온다고

담임선생님이 집에 가서 한복을 입고 오라하셔서, 고운 한복을 입고 꽃다발을 들고

중앙로터리에서 그 미국인에게 꽃다발을 주던 기억도 납니다.

참으로 오래된 이야기네요.

 

강당 뒷산을 추억어린 눈길로 바라보다가

그곳엘 올라가 볼 마음을 냈습니다.

5,6학년 담임선생님이 여자선생님으로 2년을 연이어 담임하셨기때문에

그 2년동안의 추억은 자주 헷갈립니다.

통통하고 부잣집 맏며느리감으로 생긴 유경희선생님은 글짓기를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소공녀라는 동화책도 읽어 주시고, 책읽는 습관도 길러 주셨습니다.

 

모교 뒷동산엘 오릅니다.

'머언먼 인생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늙은이가 되어

한 해가 다 가고 마는 11월 하순,

해 그림자 길게 뻗는 스산한 가을 오후에

열두어살 어린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동산을 오릅니다.

-옹기종기 해바라기하고 앉았습니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꽃은 잊지마소꽃이야, 어려운 말로는 물망초라고 하지.'

물망초에 얽힌 전설을 도란도란 나즈막히 들려 줍니다.

까만 눈망울을 굴리는 여자班 우리 60여명은 눈물을 질금대며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때, 그 시절이 참으로 그립습니다.

그 정답고 자상하시던 선생님도 이제 고희를 넘어 팔순을 바라보고 계시겠지요.

 

모교를 떠난지 꼭 쉰두해만에 와 본,

내가 졸업한 국민학교 입니다.

52년만의 추억은 참으로 쓸쓸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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