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또 하나의 섬

eunbee~ 2008. 11. 9. 00:08

 

은비오두막에 유선방송으로 연결된 TV라도 설치해서 볼까하고 지방방송국에 신청을 했습니다.

상담을 해 주는 친절하고 살가운 아가씨는 인터넷 연결도 권했습니다.

옳다구나 됐다!!

좋아라 YES!! 했지요.

 

다음날 약속된 시간에 유선방송 시청 시설을 해 주러 남자 직원이 왔습니다.

오두막 터줏마님? '아가'-이름이 없어서 오두막 개를 내가 그냥 이렇게 부르고 있지요.-에게

혼줄이 났는지, 그 남자 직원은 주인장 허락도 없이 부엌으로 뛰어 들어 왔습니다.

개에게 물린 적이 있다면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발발 떨고 있습니다.ㅋㅋ

이런 작업하고 다니느라면 사납고 못된 개를 더러 만나 봉변을 당하나 봅니다.

그러나 걱정 마세요.

은비오두막 '아가'는 참으로 순하고 사람의 손길을 몹시도 그리워 하는 할머니개니까요.

 

유선방송 직원이 과수원 끝에 서있는 전봇대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눈대중으로 봐도, 너무 멀다고 생각되나 봅니다.

'유선방송 線이 이곳까지 연결되지 못하겠네요.'

'그래요? 그럼 위성방송쪽으로 알아봐야 겠네요.'

'그러셔야 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 인터넷 연결도 안되나요?'

'네 그것도 안되겠네요.'

워메~~ 여긴 섬이야.

도시 속의 외딴 섬.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전화선은 마루에 널부러져 있고,

오두막 멀리 앞뒤로 삐죽이 서 있는 전봇대들은 또 뭣에 쓴대?

100미터 이내에 여성회관이라는 공공건물이 있고

200미터 이내에 시립체육관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근사한 모양새로 떡하니 버티고 있는

시내 한복판의 이 오두막은, 깜깜나라 미개한 땅 원시인처럼 살아야 하는 섬이었네요. ㅠㅠ

그래서 처음엔 막막하다가 나중엔 슬포졌쪄~ 잉~

 

따님들도 아드님도.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모두 내가 얼마나 심한 테순이인지, 인터넷 써핑 애호가 인지 잘 알고 있는데

TV와 인터넷은 생활 필수항목이라고 부처님 예수님 마리아님보다 더 믿고 따르는 걸 아는데

그들도 나처럼 황당하고 막막해 하다가, 나를 위해 종당에는 슬퍼하겠쥬?

오호 통재라~ 애재라~

 

그래서 난 그 섬을 떠나 와

이렇게 문명의 그늘 아래로 숨어 들어

오늘 밤도 자판을 두들기고 있답니다.

자꾸만 따라오는 할머니개를 집으로 돌려 보내느라 애쓰며, 그 섬을 빠져 나왔다우.

가끔은 소로우의'월든'에서 처럼, 그렇게 살아 볼까 하는 가당찮은 야무진 생각도 해 보지만

속세의 맛에 절여진 나는 언감생심~ 하늘에 있는 별을 따 오는 쪽이 훨씬 빠른 일이지요. 헤헤

 

내가 버려 두고 온 섬은 저 혼자 바람부는 이밤을 견디고 있을거예요.

도시속의 또 하나의 외로운 섬에 사는 검둥이형제, 그들의 엄마개, 그들의 할머니개 그리고 친구들...

모두 따스하게 코~ 잠 잘 자기를 바랍니다.

 

'오두막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장  (0) 2008.11.12
11월의 햇살  (0) 2008.11.10
바쁜 하루  (0) 2008.11.04
오두막 食口  (0) 2008.11.03
오두막 풍경  (0) 2008.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