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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살다보면...

코로나19때문만은 아니겠지? 아니, 8할은 온전히 그눔의 바이러스 때문이겠지? 가고 싶고, 하고 싶고, 누리고 싶은 많은 것을 참아내야 하는 이런 하루하루의 일상이... 그럼에도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 찬란히 솟는 아침마다의 태양, 차고 기우는 달, 한자리에 붙박힌채 몇 생을 살아내는 나무, 끝없이 불어오는 해풍, 너른들녘 건너 아슴아슴 다가오는 산빛... 먼풍경으로, 내 가까이서 눈익고 귀익은 것들로, 순간순간을 환희롭게 하는 유정무정물들.. 바라보고 듣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기쁜. '삶은 도달할 목적지가 아니라 그 여정'이라 했던가. 새해들어 어느새 한 달을 코로나를 피해 예제 기웃거리며 畵中有詩를 읊고 無情說法을 듣다보니 헛헛하기도 하지만 문득 어제 듣고 알게된 노랫말이 떠오르네. "그저 살다보면 살..

일상 2021.01.26

2021. 1. 11

# 한강이 인천 앞바다가 얼음으로 덮혔다는데 우리동네 앞냇물 탄천은 온천이 솟나?ㅋ 얼음은커녕 오리들이랑 철새가 옹기종기 한가롭게 낚시중이시다. 혹시나 해서 연일 탄천으로 나가 봤지만 얼음이 얼 기미는 영영 아니 보이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엊그제 밤 여덟시부터 가로등 불빛에 아슴아슴 꿈처럼 비추는 눈발의 모습이 좋아서, 눈만난 강아지처럼 한참 동안 눈 속을 겅중거리다 들어오니, 빨간 내 코트가 하얀색으로 바랬더군. ㅎ # 우리집 창문 아래엔 붉은 산수유 열매가 오롱조롱 어찌나 예쁘게 열렸는지... 눈 속에서 올려다보면 한 폭의 그림이다. 그 붉은 열매를 따 먹으러 직박구리가 자주 날아든다. 보통 두서너 마리가 열매를 쪼아물고 있는데 오늘은 아홉 녀석이 떼로 몰려와서 이 가지 저 가지로 포르르 거리니..

일상 2021.01.11

2020. 12. 29 너.스.레^^

코로나 19로 채워진 한해가 이렇게 가는군. 참으로 기막힌 일년. 금명간 생각되는 건 '동안거라도 아니했더라면 어쩔뻔 했을까'다. 김상욱 교수의 강의를, '세상의 모든 음악'을, 흘러간 영화들을, 읽다 만 책들을, 유투브에서, 라디오에서, 티비에서 주섬주섬 챙겨 듣고 즐기며, 동안거 마음공부 정진에 양념과 고명을 얹고 사는 하루하루도 좋구나. 엊그제 아들이 가져온 한비야 씨 신혼 이야기가 담긴 신간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는 역시 한비야 씨다운 글로 휘릭휘릭 잘도 넘어간다. 바이러스가 온 지구촌을 장악해버린 2020년은 마냥 허망하더란 생각만이 마음을 채우고 있군. 눈 뜨고부터 눈 감는 직전까지 들려오는 코로나 확진자 숫자. 이제 그만 듣고 싶다. 하루 종일 중대본과 시청과 방역당국에서 전달되는..

일상 2020.12.29

詩를 읽다가

재춘이 엄마 / 윤제림 재춘이 엄마가 이 바닷가에 조개구이집을 낼 때 생각이 모자라서 그보다 더 멋진 이름이 없어서 그냥 ‘재춘이네’ 라는 간판을 단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뿐이 아니다. 보아라, 저 갑수네, 병섭이네, 상규네, 병호네. 재춘이 엄마가 저 간월암(看月庵)같은 절에 가서 기왓장에 이름을 쓸 때, 생각나는 이름이 재춘이 밖에 없어서 ‘김재춘’이라고만 써놓고 오는 것은 아니다. 가서 보아라, 갑수 엄마가 쓴 최갑수, 병섭이 엄마가 쓴 서병섭, 상규 엄마가 쓴 김상규, 병호 엄마가 쓴 엄병호. "재춘아, 공부 잘해라!" *** 공군소령 김진평 / 윤제림 싸리재 너머 비행운 떴다 ​ 붉은 밭고랑에서 허리를 펴며 호미 든 손으로 차양을 만들며 남양댁 소리치겠다 ​ "저기 우리 진평이 간다" ​ 우..

일상 2020.12.09

冬安居

코로나 시대에 겨울 한 철을 보람으로 보낼 수 있는 일, 동안거에 들어 수행정진.^^ 노는 입에 염불이란 말이 있지만, 절집 스님들께서 하신다는 동안거 수행을 在家修行으로 정성껏 참여하여, 덕분에 '좋은 習'을 익혀 보리라 작은 誓願을 세워 보았다. 만방에 告하여 행여 게으름 일어 소홀해질 수 있는 정진에 쐐기를 박아 둔다. ㅎ 늘어지기 쉬운 일상을 엄격한 절집의 분위기로 바르게 세우고 팽팽히 당겨 바람직한 시간들로 채우고 심신 공히 건강하자. 좋은 습관은 좋은 삶을 만든다. *** "너의 하루하루가 너를 형성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한 가정을, 지붕 밑의 온도를 형성할 것이다. 또한 그 온도는 이웃으로 번져 한 사회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너의 있음은 절대적인 것이다." -- 법정스님

일상 2020.12.01

까비

2001년 봄날 파리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쯤의 거리에 있는 Moret sur Loing이라는 유서깊고 아름다운 마을 강변 메종에서 태어난 예쁜 고양이. 그해 8월 초에 우리집으로 데려와 까비라는 이름으로 은비네 가족이 된 까비. 세 살 되면서는 병원 의사의 중매로 자기를 똑닮은 두 아기를 낳았고 그후 동네 냥이와의 사이에서 또 세 번 더 아기를... 사진 속 낯선 냥이는 미에뜨라는 이름의, 두번째 출산으로 태어난 까비 딸. 미예뜨를 입양한 엄마는 자주 미예뜨의 사진을 보내온다. 까비가 떠났다는 소식에 보내온 최근 사진. 까비 19년 2개월이란 시간 동안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었던가. 우아하고 얌전한 까비, 19년 5개월여를 지구별에서 사랑스럽게 살았다. 까비에게 주던 내사랑 까비가 내게 주던 기쁨과..

일상 2020.11.19

11월, 산책 첫날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 중 체로키족은 11월을 '산책하기 알맞는 달'이라 부른다지. 그래서는 아니었지만, 오늘 아침나절 햇빛이 좋아 동네 한바퀴 산책하기엔 딱 좋은 조건이었다. 하늘은 말끔하게 닦아 둔 파아란 유리잔을 보는듯, 온갖 색채의 나무잎의 어울림은 잘 그려 둔 수채화, 살랑바람에 우수수 날리는 낙엽들은 긴 여행길에 오르는 설레는 마음인듯. 길가에 핀 철늦은 칸나 고향집 내 어린날의 뜰과 엄마를 그립게하고... 무엇보다 좋은 건 온몸을 감싸는 따끈한 햇볕.

일상 2020.11.02

그래도

아흔일곱 노모를 모시고 일흔일곱 첫딸은 막내 아우와 함께 병원엘 갔더란다. 의사에게 아우가 말했단다. 엄마가 이상해요. 의사가 일흔일곱 살 딸 손을 잡으며 어디가 어떻게 불편하세요? 일흔일곱 첫딸은 자신을 너무 늙게 봐준 의사에게 벌금을 내라고 마구 때썼단다. 억울해서 못살겠으니 벌금이라도 받아야겠다고. 의사는 박장대소로 헛소리와 민망함을 유쾌히 씻더란다. 이 의사양반 어쩜 이리도 멋드러지게 웃어재끼는지 이것으로 벌금 충분하다 했단다. 셀폰너머 들려오는 일흔일곱 젊은 노인 내 동무, 내게 말한다. 내가 이렇게 억울한 대접을 받고 살고 있으면서도 웃고 있으니... 그래도... 좋구나. *** 고향 동무, 내 친구 노모께서 치매가 시작되셨단다. 無男多女 딸부자집 첫째딸, 아래로 둘은 독일 가 살고 저 아래 ..

일상 2020.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