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2432

Sceaux 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파리행 대한항공의 항로가 변경됐다. 이륙 시간도 한시간 반가량 당겨졌다. 인천공항을 이륙한 여객기는 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우루무치 상공을 지나 위로 약간 굽은 곡선을 그으며 날다가 조지아 상공에서 거의 직각으로 우측방향으로 꺾고, 거기부터는 직선으로 북쪽을 향해 날았다. 우리의 목적지 파리는 여객기 좌석 모니터에 안내되는 항로의 북쪽 끝지점에 표시되어 있다. 장장 14시간의 비행으로 가 닿은 곳, 파리 샤를르 드골 공항. 파리는 보슬비에 젖고 있었다. 그날이 이틀전. 내고향보다 더 마음 편한 Sceaux 소나무길에서 화사한 목련의 환영인사를 받은 시각은 저녁 아홉시 즈음. 냄새부터 다른 이 동네. 한결같이 매혹적이며, 무엇보다 평온함이 좋은 곳. 좋은것만 보이고 심란스런 말..

Sceaux에서 2022.04.06

가시난닷 도셔오쇼서

매주 금요일 저녁 알릴레오 북's의 책 이야기 듣는 재미는 1주일을 짧게 해준다. 지난 두 주는 [앤드 오브 타임], 작은딸의 요청으로 일찌기 구매하여 아들이랑 나는 이미 일독한, 브라이언 그린의 'UNTIL THE END OF TIME'으로 김상욱 교수와 유시민 작가가 즐겁게 즐겁게 북톡을 나눴다. 언제나 그렇듯 두분의 케미는 내겐 최고의 즐거움이다. 그런데! 어쩌나, 이걸 어쩌나. 시즌2를 마치고 한동안의 휴지기간으로 들어간단다. 기다리면 돌아오지만 그래도 서운코 벌써부터 허전타. 이것도 병이야. 배냇병. 쓸쓸해지는 마음에 문득 뱉은 말, "가시난닷 도셔오쇼서" 차암~ 이상타. 오래도록 잊었던 싯구들... '가시리 가시리잇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노래도 마구 불렀다. 시즌3가 너무 늦지않게 시작되기..

일상 2022.03.05

'오리 2字'가 많은 날에

작은 딸이 유치원 가기전 익힌 글자는 오로지 한 글자, 아라비아 숫자 2.^^ 연년생 자매를 같은 해에 유치원에 입학시키니 한살터울 큰애는 서너살 위 언니처럼 동생을 돌보고 챙겼다. 그리기, 쓰기는 물론 동생의 신발 안의 모래까지 털어주며 유치원을 함께 다녔다. 큰애는 네댓살 때 TV자막을 눈으로 익히며 혼자서 한글 마스터. 숫자는 피아노책에서...신통방통. 어느날 큰애 손잡고 길을 걷는데, 가게들의 간판을 줄줄이 읽어내려가서 엄마는 얼마나 놀랐는지. 아마도?, 어쩌면?, 혹시?? 나는 천재를 낳았는지도 몰라. 피아노를 3년쯤 배우더니 예닐곱 살 땐, 눈감고도 여든여덟 건반의 음을 다 아는거야. 옳거니 천재를 낳았구나! 내가! ㅋㅋㅋㅋ 오리 2字로 스스로 '만족해'^^ 하던 작은 딸은 커가며 세상살이 적..

일상 2022.02.22

오래된 기억

"물리적인 나는 '뇌'며, 철학적인 나는 '기억'이다. 나의 자아라는건 기억의 집합체다. 기억을 상실하면 다른 인격체가 된다. 경험, 감정, 공유한 기억들을 상실하게 되면 관계가 끊어진다. 그것(나의 기억)이 없으면 내가 아니다." "가족은 공유하는 기억의 집합체다. 긍정적이고 밝은 기억을 많이 공유한 가족이 화목한 가족이다." ㅡ 유시민 작가의 알릴레오 북's 엄마의 말뚝(박완서) 북토크 중에 , 유시민 님 말씀 ㅡ *** 아주 오래 전, 내가 고등학교 때이니 60년대 초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오빠는 내게 '자유문학' '현대문학' '사상계'를 가끔 보내 주셨다. 그 세 종류 책중에 어느 월간지에서 보게 됐는지는 기억에 없는 내용 한가지, 참으로 오래된 기억 하나, 60여 년을 지나 오며 무시로 문..

일상 2022.02.17

< 우리는 만나야 한다 >

- 금강스님 산문집 [물흐르고 꽃은 피네] 중- 오래전부터 꽃 피는 계절마다 만나는 차 모임이 있습니다. 각자 차와 다과와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서 만나는 모임입니다. 매화가 필 무렵이 되면 악양 동매골에 매화차회를 하기 위해 벗들이 모여 듭니다. 퇴계의 을 읊조리고 매화 띄운 차 한 잔을 마십니다. 연꽃이 피면 무안 회산방죽이나 강진 금당연못의 연꽃과 함께 연꽃을 노래하고 차를 마십니다. 산국이 피면 땅끝마을로, 눈꽃이 피면 봉화 청량사로 모입니다. 맑은 차 한 잔과 귀담아 들을 지혜의 이야기와 속사정을 살피는 만남은 참 반갑고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다산선생도 시 짓는 친구들과 함께 모임을 만들고 서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살구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처음 ..

일상 2022.01.10

歲暮에

한 해가 이렇게 저문다. 코로나19와 변이바이러스로 온세상이 난리통속에서 불편하여 불행했던 2021년. 평범한 일상이 행복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갇힌 생활에 어느새 익숙해져 살아낸 두 해. 새해엔 또 어쩌려나. 설상가상 41년만의 한파가 왔단다. 50cm가 넘는 폭설도 내렸단다. 그속에서도 새들은 떼지어 비행하며 찬공기를 가르고 즐거운듯 노닌다. 모과나무 잎 진 가지의 모과 한 개도 고요롭게 겨울을 감상하며, 견딘다. 호들갑이 심한 건 인간이 으뜸인가 보다. 창밖 한파가 무서운 나는 절집 처마 아래같은 내 最愛공간에서 야보선사의 시 한 수로 세모를 맞는다. # 산당정야좌무언(山堂靜夜坐無言) - 산 집 고요한 밤, 말없이 앉았으니 적적요요본자연(寂寂寥寥本自然) - 고요하고 고요함은 본래 그런 것을 하사..

일상 2021.12.27

2021. 12. 07

大雪이란다. 큰눈 대신 큰볕(太陽)이 따숩게 번진다. 먼데서 왔을 가마우지가 날개를 펴고 볕을 쬔다. 이 동네 터줏대감이 된 백로는 늘 여유롭게 노닌다. AI에 노출되거나 말거나 냇물을 즐기는 생명들은 즐겁다. 그들을 걱정하는 건 나뿐인가 보다. 풀씨앗을 열심히 쪼는 비둘기 떼를 센다. 움직이는 비둘기를 정확히 세는 건 쉽지 않다. 둘씩 묶어서, 다섯씩 묶어서, 아니 그건 오히려 어렵군, 한 마리씩 헤아린다. 풀씨앗을 찾아 열심히 전진하는 비둘기 떼, 종종종종 손흥민 드리블보다 더 재빠르게 잰걸음으로 치고 나가는 녀석들이 있으니 숫자세기는 더 헷갈린다. 다섯번을 셌더니 89마리로 확인됐다. 휴우~~ ^^ 천변에 나오면 이렇게 즐거울 일이 많아 좋다. *** 12월 3일은 엄마 생신이라며 쪼끔 먼곳으로 드..

카테고리 없음 2021.12.07

2021. 11. 09

늦가을 비가 차다. 찬비 맞은 나뭇잎들은 그 색이 더 도드라져 한결 새뜻하다. 덕분에 눈이 화안해지니 맘도 또렷해지네. 고향집 큰올케님 전화, 아침에 오빠가 눈을 반짝 뜨더니,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ㅇㅇ가 일요일날 또 온다했어~' 아, 눈뜨기도 버거운 내 오빠가...ㅠ.ㅠ 오빠는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이건만 벌써부터 누이를 기다리나 보다. 나 어릴적부터 각별히 어린누이 챙기던 정많고 다정한 내 오라버니. 병상에 누워 지내신다. 기력차려서, 가끔 함께 가던 곳으로 산책 가자 약속한 걸 떠올리셨나 보다. 그 약속이 오빠 눈을 반짝이게 했을까. 오빠의 기다림이 가슴 에인다. 눈을 들어 창밖 울긋불긋 가을 나무를 본다. !!!!!!! ........ 늦가을 찬비 속에서 더욱 아름다운 색깔로 나부끼는 잎새..

일상 2021.11.09

가을 선물, 고마워~

요즈음 눈에 와닿는 모든 풍경이 황홀하니 마냥 가슴 벅차오를 뿐이군. 예쁘다. 발길 멈추고, 보고 또 본다. 그중 고마리꽃숲에 숨어 있다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수십 수백 마리의 작은새떼를 만나면, 내 심장은 멎을 것 같아. 사진으로 담을 수 없으니 볼 때마다 뛰는 심장박동 빠르기가 똑같은 거야. 가을이 부려놓는 선물 고마워~ 고마워~ 사진 ; 맨 아래 - 고마리숲에서 날아와 나무에 앉은 보이지 않는 작은새들(참새닮은, 재빠르고 떼지어 다니며 떼창부르며 노는 새. 홍굴레님이 수삼년 전에 이름 가르쳐 주셨는데... 모르겠네 ㅠ) 그냥 좋아하고 반가우면 돼.^^

일상 2021.10.30

난 참 복이 많아

난 참 福을 많이 타고 났나 보다. 지은福은 많지 않건만, 받는 복은 많으니 아마도 타고난 복이라 여겨진다.^^ 따져보면 내 시대는 아슬아슬,수선수선, 난리북새, 아수라장... 상황의 시간들을 관통해야 됐건만 부모 잘 만나, 이웃 잘 만나, 이렇게 복스럽게 살아간다.^^ 유시민 작가는 젊은 한때 소망이 '대통령을 내손으로 뽑아 보는 것.' 이라 했다. 예순 넘은 지금은 '이만큼 나라가 제모습 갖추었으니 이제 누구나 공평하게, 살고 싶은 대로, 잘 사는 나라였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내가 오늘날 제대로 잘 살고 있는 건 유시민처럼 올바른 뜻을 가진 이웃 덕분이고, '요시코'라는 이름으로 半年 남짓 불리우던 내가 육이오사변을 무사히 겪어 내고, 박정희와 전두환을 지나면서도 멀쩡하고 무탈하게 어려움없이 지..

일상 2021.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