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오래된 기억

eunbee~ 2022. 2. 17. 12:29



"물리적인 나는 '뇌'며, 철학적인 나는 '기억'이다.
나의 자아라는건 기억의 집합체다.
기억을 상실하면 다른 인격체가 된다.
경험, 감정, 공유한 기억들을 상실하게 되면 관계가
끊어진다. 그것(나의 기억)이 없으면 내가 아니다."

"가족은
공유하는 기억의 집합체다.
긍정적이고 밝은 기억을 많이 공유한 가족이
화목한 가족이다."

ㅡ 유시민 작가의 알릴레오 북's
엄마의 말뚝(박완서) 북토크 중에 , 유시민 님 말씀 ㅡ

***

아주 오래 전, 내가 고등학교 때이니 60년대 초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오빠는 내게 '자유문학'
'현대문학' '사상계'를 가끔 보내 주셨다.
그 세 종류 책중에 어느 월간지에서 보게 됐는지는
기억에 없는 내용 한가지, 참으로 오래된 기억 하나,
60여 년을 지나 오며 무시로 문득 문득 떠오르는
신기한 기억.(내 기억력은 나쁘기로 자타공인^^)

'정 종'이라는 필자께서 당신의 자녀들 이름을 한글
이름으로 지으시고, 그 후 생긴 에피소드였다.
큰 아드님 이름을 [정 어지루]라 지으셨는데
그 아드님이 국민학교 때, 시험 답안지 성명 기입란이
석자만 들어가게 돼있으니 [정 어지]라고 썼더란다.
그 다음 따님을 낳으시고 [보미나]라는 이름을 주셨단다.
따님은 입학해서 답안지 성명란의 공간을 늘려
[정 보미나]라고 썼더라는... 내게 참으로 인상깊게 남은,
그래서 그 에세이를 읽은 직후 교실에서 옆짝궁에게
물었었다.
"다혜야, 넌 나중에 아기 낳으면 이름을 어떻게 짓고 싶어?"
"음~, 난 [바비나]로 지을거야. 생명에겐 먹는 게 가장
중요하잖아, 그래서 바비나(밥이나) 싫컷 먹으라고..."
내짝궁은 교육학 시간에 선생님의 질문에도 명쾌한 답을
내뱉던 문학소녀였다. 평가문항 작성 요령, 방법, 유의점
등등을 배우는 시간, 교육학 선생님 질문
"문제란 무엇인가?"
내짝궁의 일갈 "두통꺼리!"
교실은 웃음바다였지만, 나는 그 촌천살인에 쌍따봉~^^


오래된 기억,
정어지루 라는 이름이 내겐 너무 멋졌고
정 종 이라는 이름도 머리에 새기기 쉬웠나보다.
인터넷 사용이 활발해진 세월 어디쯤에서
[정어지루]라는 검색어로 검색했더니, 어머나
그 이름을 가진 분이 검색되는거지 뭐야. 어찌나
반가운지! 아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 듯. ㅎㅎ
그리고 또 20~30년 지났을까? 어제 문득 생각나기에
또다시 검색해보니 오모나 목원대 교수로 정년퇴임하신지
오래전, 나보다 서너 살 아래이신 정ㆍ어ㆍ지 ㆍ루 라는
함자의 어느분. 60여 년을 내 기억속에 있던 이름.
참으로 오래된 이야기, 오래된 기억.

서울 가신 오빠는, 비단구두 대신 문학월간지를 사
보내시더니 지금은 병석에 누워 계시는 시간이 더 많다.
좋은 것만 찾아 기억하자.
밝고 긍정적인 기억을 많이 공유한 가족이 행복하다잖아!


***

사진 ;
인터넷 검색으로
옮겨 온.. ㅡ창간호 들ㅡ
*현대문학 1955. 1월
*자유문학 1956. 6. ~ 1963. 8. 경영난으로 종간
*사상계 1953. 3. ~ 1970. 5 김지하 詩 오적 게재로
당국의 폐간처분으로 종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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