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거들떠보기 24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 정 희 -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연말엔 '나의 아저씨'*가 황망히 세상을 떠나 모두를 안타깝게 하더니, 정초엔 정치인 이재..

추석날, 앞산 능선너머를 바라보다

대답하지 못한 질문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시대가 와도 거기 노무현이는 없을 것 같은데?" "사람 사는 세상이 오기만 한다면야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2002년 뜨거웠던 여름 마포 경찰서 뒷골목 퇴락한 6층 건물 옥탑방에서 그가 물었을 때 난 대답했지. "노무현의 시대가 오기만 한다면야 거기 노무현이 없다한들 어떻겠습니까?" 솔직한 말이 아니었어. 저렴한 훈계와 눈먼 오해를 견뎌야 했던 그 사람의 고달픔을 위로하고 싶었을 뿐. "대통령으로 성공하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욕을 먹을지라도 정치 자체가 성공할 수 있도록 권력의 반을 버려서 선거제도를 바꿀 수 있다면 그게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요?" 대연정 제안으로 사방 욕을 듣던 날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