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거들떠보기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eunbee~ 2024. 1. 5. 12:15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 정 희 -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연말엔 '나의 아저씨'*가
황망히 세상을 떠나 모두를 안타깝게 하더니,
정초엔 정치인 이재명 씨가
섬뜩한 테러를 당해
연이어 우릴 절망스런 우울 속으로
침몰시켰다.
그분께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져
회복실로 옮겨지던 짧은 순간의 영상에서
'당정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나야 한다'는 요지의 말이 자막으로
뜨는 순간 내 입에서 터져 나온 , "아~~~!!!"
외마디 후 .. 왈칵 솟는...
눈물.
겨우 목숨 부지한 그상황에서도
그런 의지를 내비치다니.
그분에게서 정치란 무엇이기에...!!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다.

***

* '나의 아저씨'  TV드라마 제목

그 드라마에서
배우 이선균 씨가 읊조리던
마지막 대사가
귀에 맴돈다.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우리나라의 사회 분위기가
너무 무섭다.
'之安'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正常에 가깝기만을 희망하며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

지난봄 어느 날 아침
부르고뉴 들녘엔 안개 가득~
아들과 함께...

이 나라로부터 멀리 멀리
좀더 머얼리 있고 싶다.

그러나
이렇게...
오늘도, 시인이 읊조려 준 시
한 수로 나를 달래보려 애쓰며
내 나라의 참담한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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