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그로브숲

고향의 봄

eunbee~ 2015. 4. 10. 11:15

형부께서 떠나신 후

내 오빠는 잡동사니 잔병으로 한바탕 고생을 하셨나 보다.

"상경한 후 소식이 뜸해 궁금하네.건강 잘 지켜라.

나는 설사, 감기몸살, 관절.. 한목에 한씨름 했단다.십년은 더 늙었단다.

늙은 모습 한 번 보러 오려무나. 오라버니를~" 카톡으로 보낸 내오빠의 엄살섞인 그리움이시다.ㅎ

파리로 떠나기 전, 갓 과부로 등록된(ㅋㅋ)언니도 봬야 하고, 한참이나 못볼 누이를 보고파 하시는 오빠도 뵐겸

고향 나들이.

 

 

들판 가득 지천인 꽃다지

 

 

양짓녘 다소곳 피는 제비꽃

울엄마 아부지 묘소봉분 위에도 봄마다 피는 꽃

 

 

냉이꽃, 제비꽃, 꽃다지꽃..

내 고향 나의 봄꽃은 뭐니뭐니 해도 작은 풀꽃들이다.

양지에 앉아 저 작은 꽃들을 들여다 보던 내 어린 소녀의 모습을

늙은 나의 봄에도 아릿하게 보듬는다.

 

 

충주호 호반의 벚꽃은 화사하게 웃건만

달천 강물은 바싹 가물어, 봄배도 띄울 수 없단다.

나 어릴적 소풍 오던 곳, 오늘은 다 늙어버린 형제들과 산책 나왔다.

 

 

 

 

 

탄금대

우륵이 거문고를 타고, 신립장군이 물에 뛰어들었다는...

우리 어릴 적 이런저런 행사로 해마다 두어번씩 오던 곳.

내 동무들과 강물에 배처럼 떠있는 작은 섬을 바라보며 시읊던 곳.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랫빛'

이젠 그 금모래빛도 꿈 속 풍경이구나.

 

강변 카페에 앉아 이름도 길다란 커피를 마신다.

두 언니들의 입 속엔 가만가만한 허밍, 내 커피잔 속엔 상큼한 민트향.

 

 

 

 

 

신립장군의 열두대

 

 

 

 

이곳 칠금동에서 태어나셨다는 권태응 시인의 시비 옆 조각품.

 

'감자꽃'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해는 저만치 기울고, 중앙탑의 실루엣이...

 

 

 

여든 잔치를 지난 해에 맞이한 내언니,

칠십 가까워 오래된 무릎을 절룩거리면서도

봄날 온 하루를  즐거이 나들이 하는 큰올케님,

그들이 강가 작은 정자에 앉는다.

그들 못잖게 늙은 동생이 그녀들 앞에서 재롱을 편다.

'수양버들 춤추는 길에, 꽃가마 타고 가네~'

노랫가락 흥겹고 춤사위 간들거리는...

 

잘 웃는 큰올케는 배꼽 빠지며 손뼉치고

음전한 내언니는 "둘이 보기 아깝군~" 한다.ㅎ

수양버들 아래서 옛생각하며 펼치는 재롱 속에서

한 때의  기억을 건져 올린다.

줄리엣 그레꼬의 손짓을 흉내내며 신랑앞에서 아양떨던 내 그 옛날.

멋적게 끝나던 그 이야기.

내 언니들처럼 이렇게 화알짝 웃어줄 수도 있으련만. 으이그~ 웬수.ㅎㅎㅎ

 

서너 살 적에도 마루에서 춤추다가 봉당으로 떨어져 콧잔등을 깨더니,

환갑진갑 지난 때가 언제인데 아직도 저리 춤을 출꼬~

음전스런 내언니는 기쁜건지 한심스러운건지, 한마디 한다.

당신들과 내 하루를 기쁘게 하려는 내 재롱이 대견한거 겠지.ㅋ

봄날 온이틀, 좋은 곳 좋은 음식 좋은 이야기로, 형부 떠나신 뒷풀이를 그렇게 마친다.

현관 앞에서 배웅하는 그들에게 "파리 다녀와서, 또 노래부르고 춤춰 줄게 기다려~^^"

인사 하고 떠나온 고향.

 

내 고향의 올봄을

그렇게 맞이하고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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