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그로브숲

은비, 감기와 공부와 씨름 중

eunbee~ 2014. 10. 13. 23:05

은비엄마에게서 방금 전 카카오톡이 왔어요.

은비가 감기로 앓고 있어서, 체육수업을 받지 않게 조처했다고 해요.

은비네 동네에는 비가 내린답니다.

 

이제 은비는 우리나라 학제로는 고등학교 2학년, 프랑스에서는 premier.

Bac(바깔로레아)을 준비하기 위해 전공과목을 선택하고 아울러 공통필수과목도 공부하기 때문에 수업량이 대단합니다.

은비는 SI(sciences ingenieur)를 선택해서 다른 반보다 수업시간이 3시간 더 많습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후 은비엄마의 첫 톡이 '은비가 사상최고의 불어점수를 받아왔네.' 16/20 였어요.ㅎㅎㅎ

프랑스어 성적이 부진해서(책을 그리도 읽지 않으니 불어성적이 좋을리 있나요? 하기사 나는 거의 문자중독이라고 할만큼

늘 뭔가 손에 들려있고 문자만 보면 읽어대느라 가던 길도 못가는 형편이지만 문맥은 전혀 먹통이니...ㅠㅠ)

'늘 12점 안팎을 기더니'(은비엄마표현)파리에서 일주일에 한시간 씩 받는 과외덕분에 성적이 올라 기쁘다고 하네요.

 

프랑스 바칼로레아는 고등학교 1학년(2학년Seconde, 1학년premier,졸업반terminale)때 프랑스어와 그룹프로젝트(4인이하가

모여 주제선정, 계획, 연구, 조사, 발표 등의 과정을 채점하는)를 시험보고, 졸업반에서 나머지과목을 봅니다. 

그리고 프르미에르 성적부터 대입에 반영되기에 은비는 매우 중요한 시기에 놓여있지요.

 

학교를 다녀와서 그 많은 숙제에 매달리느라 정신이 없어요.

정말 빡세게 애들 잡던걸요. 여기나 거기나 대학을 가기위해 모두들 힘들게 공부해요.

 

어느날 은비가 "할머니, 우리학교 선생님들 모두 무인도로 좀 보내줘~" 그러더라구요.ㅋㅋ 얼마나 힘들면...


 

 

프랑스에서는 학부모라 해도 학교방문하기가 쉽지 않아요.

9월 하순 어느날 1차세계대전 발발 100주년 기념행사로 학생들의 작품 전시(전쟁에 관한 다양한 분야의 작품)가 있다고 개방하기에

잠깐 가서 숲속과 교무실이 있는 중앙건물만 살짝 보고 왔어요. 이학교는 체육수업도 실내에서 하고 운동장은 아예 없어요.

쏘공원을 방불케하는 숲이 우거진 조용한 교정이에요.

 

 

 

 

이 큰나무가 튤립나무더군요. 튤립나무라고 알고 본 것이 이곳에서 처음이었어요. 300년~400년된 나무라고 적혀있어요.

그 아래 저 조그만 초록색 동그란 나무는 100년된 나무라는데, 어쩜 저렇게 어려보이는지.

 

 

1854년에 개교한 리세 라꺄날의 중앙교무실동이에요. 교무실건물의 0층 현관에는 학부모와 쏘의 원로들이

작은 기념행사에 참석할 복장으로(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오신 노병도 계시고) 학생들의 작품을 보고 있었지요.

 

 

 

 

 

여러장소에서 영상으로 그림으로 에세이로 전쟁에 관한 것들을 보여주던데

나는 중앙교무실건물만 대강 담고 왔어요.

 

돌아오는 길에 염명순 시인님의 고양이가 나를 보고 '야웅~ 야웅~'하면서

담넘어에서 나오고 싶어하는데 꺼내줄 수가 없어서 그냥 헤어졌지요. 보슬이(고양이 이름)는 동그마니 앉아서 가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 울타리에서 꺼낼 방법이 없더라고요.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해요.

 

왜냐하면, 보슬이가 그날로부터 이틀 후에 자동차에 사고를 당해 왼쪽눈이 튀어나와 눈동자를 제거하고 봉합수술을 받았으며

턱이 완전히 바스라져서 먹지도 못하고 튜브로 음식물을(유동식) 투입하는 슬픈일이 일어났거든요.

은비엄마 차로 보슬이를 응급실로 데려가고... 우리 모두는 너무 놀라고 슬퍼서 며칠동안 패닉상태였어요.

내가 오기 대엿새 전쯤의 일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모두 슬픔에 싸인채 떠나오고... 문자로만 인사하고... 그랬거든요.

 

 

 

벌써 1주일 전쯤 포스팅해 두었던 것을 이제서야 [등록]단추 누릅니다.

은비는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이 책상에 앉아 산더미같은 숙제를 하느라 애를 쓸거예요.

가위에도 병에도 리본을 매두고, 한송이 꽃을 꽂아두는 은비가 어여쁩니다.

 

공부에 시달리는 은비가 안쓰럽기도 하고,

자존심만큼의 공부는 해주는/감당해내고 있는 은비가 고맙기도 합니다.

친구도 잘 사귀고, 스스로를 품위있게 가꾸어 가는 은비가 대견하고요.

할머니가 없으니 이제 파리로 과외공부가는 일요일에도 혼자 잘 다녀요.

 

감기는 툭하면 달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그 감기와 인연을 끊을 수 있을런지요.

외할머니 체질을 닮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은비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립니다.

내가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앉아있는 시간처럼 은비가 책상에 앉아 자기 공부를 하기를 바라는

그 어떤 염력의 작용을 바라면서요. 그것이 내 방식의 기도이기도 하지요.ㅎㅎ

 

나는 은비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기에 그렇게라도 한다우.

 

 

** 은비에 관한 이야기는 친구공개로 하겠어요.

파리의 은비엄마 친구나 선배 중에 이 블로그에 자주 오는 사람들이 있어, 이곳에서 읽는 것을 은비엄마에게 이야기한답니다.

그래서 은비 이야기 올리지 말라고 내게 잔소리 했걸랑요. 그런데 나는 은비 이야기 하고 싶은걸 어째요.ㅎㅎㅎ. 못말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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