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해바라기를 그린 이야기

eunbee~ 2012. 8. 12. 10:13

꽃병에 꽂힌 열두 송이 해바라기. 91×72cm. 1888년 8월. 캔버스에 유채

 

 

테오에게

 

마르세유 사람들이 부이야베스 생선수프를 먹는 것처럼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커다란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다는 것에 너도 놀라지는 않겠지.

캔버스 세 개를 동시에 작업중이다.

첫번째는 초록색 화병에 꽂힌 커다란 해바라기 세 송이를 그린 것인데, 배경은 밝고 크기는 15호 캔버스다.

두번째도 역시 세 송이인데, 그 중 하나는 꽃잎이 떨어지고 씨만 남았다. 이건 파란색 바탕이며 크기는 25호 캔버스다.

세번째는 노란색 화병에 꽂힌 열두 송이의 해바라기며, 30호 캔버스다.

이것은 환한 바탕으로, 가장 멋진 그림이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어쩌면 여기서 끝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갱과 함께 우리들의 작업실에서 살게 된다고 생각하니 작업실을 장식하고 싶어졌거든.

오직 커다란 해바라기만으로만 말이다. 네 가게 옆에 있는 레스토랑이 아주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는 걸

너도 알겠지. 나는 그곳 창문에 있던 커다란 해바라기를 늘 기억하고 있다.

 

이 계획을 실천에 옮기려면 열두 점 정도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 그림을 모두 모아놓으면 파란색과 노란색의 심포니를 이루겠지.

매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그림을 그리고 있다. 꽃은 빨리 시들어 버리는데다, 단번에 전체를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꽃병에 꽂힌 세 송이 해바라기. 73×58cm. 1888년 8월. 캔버스에 유채

 

이곳 남부지방이 점점 좋아진다.

먼지 덮인 엉겅퀴꽃 주위로 무수한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그림도 그리고 있다.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인물화를 위한 모델은 아직 구하지 못했다.

새로운 그림의 아이디어가 많다. 오늘은 석탄을 실은 배에서 일꾼들이 짐을 내리고 있는 광경을 다시 바라보았다.

같은 장소를 그린 뎃셍을 너에게 보낸 적이 있지. 그건 굉장한 소재가 될 것이다.

요즘은 점점 더 단순한 기술을 시도하고 있는데, 어쩌면 인상주의적인 방법은 아닐 것이다.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엄밀하게 그릴 생각이다.

 

1888년 8월.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중에서 옮김  ***

 

 

꽃병에 꽂힌 열두 송이 해바라기. 91×72cm. 1888년 8월. 캔버스에 유채

 

 

꽃병에 꽂힌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 93×73cm. 1888년 8월. 캔버스에 유채

 

해바라기(Vase with Fifteen Sunflowers·91×72cm, 1988)

 

 

 

 

퇴직을 하고 놀멘놀멘 세월 보내기가 그래서 그동안 몹시도 하고 싶어했던 그림그리기에 도전.

아트센터 수채화반에 등록을 하고 11월 초부터 그림을 배웠다.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은 수채화 공부하는 날.ㅎ~

남녀노소 불문으로 뒤섞인 수채화반 분위기는 좋았다.

 

미술을 전공한 젊은 엄마들도 있고....

두시간의 수업이 끝나면 나는 남아서 그 젊은 엄마들과 함께 그림을 더 그리고는 했다.

그림을 전공한 그들이 손을 쉬지 않으려고 이런 장소를 찾는다는 것이 참으로 좋아보였다.

어깨너머로 그들의 기법을 흉내내며 한시간 가량씩 더 그리다가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한달이 가까워졌을 때, 자투리 종이가 있기에 집에 혼자 앉아서 심심풀이로 그린 해바라기를 순 엉터리인줄도 모르고

냉장고에 떠억~하니 붙여두고.... 주방을 오며가며 혼자 스스로를 대견해 했다.

자꾸만 보다보니, 꽃병이 올려진 탁자와 벽과의 경계도 없고, 참으로 웃기는 그림이라서 냉장고에서 떼내었다.

모르면 용감해.ㅎㅎㅎ

 

 

벽에 매달린 또는 허공에 뜬 해바라기. 29×29cm 종이에 수채

수강 4주째의 어느날 자투리 화지가 아까워서 헤작부려본 그림.ㅋㅋ

그때는 그림그리기로 헤작부리던 부지런한 세월이었구나..에혀~

 

그림선생은 국전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는 실력을 인정받는 남자 선생님, 나보다 반십년쯤? 아래로 보이는

술 좋아하고, 착해보이고, 낭만에 찌들고, 사람에게 더러더러 배신같은 것을 당해서 세상을 더러더러 슬퍼하고

사람에 대해 더러더러 서운해 하던 그분. 그선생에게는 새끼선생(보조선생)도 있었다. 그 해 가을 국전에 그 보조선생은 수채화 부문에

입선하였다. 그녀가 입선하기 바로 직전에 나는 그녀의 그림 한점을 구입했는데, 우리 그림선생님은 나에게 행운이라고 했다.

국전에 입선했으니 그림값이 올라갈 거라고...ㅋㅋㅋ  그러나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지 한달도 채 안된 나는 그녀의 그림에 매혹되어 생각없이 구입한 것이렷다.

집에 두고 열심히 그녀의 그림을 모사해 볼 욕심으로....ㅎ

 

 

해바라기. 45×52cm 종이에 수채

수강 6주째, 보조선생님의 그림을 사다두고 모사를 한 그림

..........

그로부터 6주를 더 수강하고 파리로 떠난,

'노력하면 대성할 기미가 보이던' eunbee였더란다. 푸화하하핫! 

 

.

.

 

비가 온다.

정말정말 싱그러운 일이다.

은비는 아직 꿈나라,

 

그제는 내 사촌오빠가 돌아가셔서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엘 다녀왔다.

세상 사는 일이, 사람의 한평생이라는 것이, 몹시도 허망스럽다.

 

반 고흐는 그의 영혼을 담은 그림으로 세상에 기억되고,

나는 내 왕초보 그림을 바라보며 삼매의 순간을 기억한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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