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편린들

이가을 그리움을 위하여

eunbee~ 2011. 10. 5. 15:35

[ .......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도 춥지 않은 남해의 섬,

노란 은행잎이 푸른 잔디 위로 지는 곳,

칠십에도 섹시한 어부가 방금 청정해역에서 낚아올린 분홍빛 도미를 자랑스럽게 들고

요리 잘하는 어여쁜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풍경이 있는 섬,

그런 섬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에 그리움이 샘물처럼 고인다.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그동안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릴 것 없이 살았으므로 내 마음이 얼마나 메말랐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은 내년 여름엔 이모님이 시집간 섬으로 피서를 가자고 지금부터 벼르지만 난 안 가고 싶다.

나의 그리움을 위해.

그 대신 택배로 동생이 분홍빛 도미를 부쳐올 날을 기다리고 있겠다.]

 

 

위의 글은 올해 초에 작고하신 박완서 님의 단편 [그리움을 위하여]의 끝부분이다.

여기에서 '나'라는 화자는 그릴 것 없이 평생을 살아온 유복한 노년의 여인이고, '동생'은 '나'의 집에서 집안일을 거들고

부엌일을 도맡아하는 사촌여동생으로, 고생줄에 접어든 노년기를 맞은 여인이다.

 

그 '동생'이 남해바다 사량도에 가서 새로 찾은, 70에도 섹시한 어부와의 사랑을 못마땅해 하는 '나'의 심정을

박완서 님답게 잘 그려낸, 매우 담백하고 맛깔스런 산문처럼 가볍게 흘러내리는 여울물 같은 글이다.

그리울 것이 없던 평생의 끝자락에서 '동생'의 일들로 인해 그리움을 배워가는 여인은,

늦은 나이에 그리움의 윤기나는 서정을 안고 살게 되는 축복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리라.

그리움이란 생을 윤기나고 풍요롭게 하는 축복의 선물이라고 작가도 이글에서 굳이 새롭게? 이야기한다.

 

박완서 님은 70즈음의 연세에 어느 산문에서 "느낌이 실제보다 더 확실해지는 나이, 때로는 망령하고 노닐 수도 있을 것처럼

육신은 아무것도 아니게 가벼워지면서 자유의 경지같은 게 예감처럼 다가오는 나이가 바로 70대가 아닐까."라고 쓴바가 있다.

그렇게 말씀하시던 무렵에 쓴 단편에서,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라고 소설 속의 화자 '나'를 통해서 고백하신다.

 

그리움이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윤기나게 만드는가.

이 가을은 그리움의 시간들.

가슴저미도록 그리운 것을 그리워하자.

그리운 모든 대상들을 가슴 미어지도록 안아보자.

이 가을엔 그리움을 위해 축배를 높이 들 일이다. 

 

그 누구라도 사량도의 어부, 70나이에도 섹시해 보이는 멋진 그리움을 만나려면

한 세월 사는 동안 그리움이란 쇼콜라를 늘 맘속에 넣고 오물거릴 일이다. 하핫!

 

2011. 10. 5. 오늘의 독후감 끝.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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