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루비의 뼈다귀

eunbee~ 2008. 12. 14. 15:37

곰국을 끓였다.

뽀얀 국물은 보기만 해도

보드랍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고소함이 느껴진다.

뼈다귀를 건져냈다.

쓰레기통에 버리다가, 애기손바닥만한 걸 하나 남겼다.

루비에게 줬다.

좋아서 꼬리를 흔들며 뼈를 물고 식탁 아래로 간다.

뼈다귀 주위에 붙어있는 미끈거리는 살점을 핥는다.

먹을 것이 없는지, 입에 넣지 못해서 인지 식탁 밑에 두고

뼈다귀를 지키고 앉아있다.

내가 움직이면 짖어댄다.

뼈를 빼앗을까봐 그러나보다.

식탁 아래서 아예 나올 생각도 않고, 뼈를 깔고 앉아있다.

 

나는 소파에 가서 티비를 본다.

아주 편안하다.

내가 소파에 앉기만하면 루비는 내 손을 할퀴고 내 얼굴을 핥고,

내 입 가까이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거나, 함께 놀자고 매우 귀찮게 군다.

그런데 그 뼈다귀때문에 아주 조용하게 앉아있다.

한참을 뼈를 지키고 앉아있던 루비가 뼈를 물고 내 곁으로 와 앉는다.

엉덩이를 내쪽으로 하고, 뼈는 자기 머리맡에 두고 코를 뼈앞에 바짝대고 앉았다.

다른때 같으면, 내 무릎에 턱을 괴고 앉거나, 귀찮게 굴었을 루비가 나를 경계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으르렁 댄다.

가진것을 지키려는 본능이 참으로 서글프다.

루비를 행복하게 하려고 물려준 뼈다귀가 루비를 불행하게 만들어 주는 것같아

애처럽고 안쓰럽다.

뼈다귀 하나가 무에 그리 소중해서

저토록 연연하고 집착하는 걸까.

자기가 그토록 좋아하는 사람에게 안겨 오지도 못하고

자기를 그토록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 경계심을 갖다니...

루비가 가엾어지면서,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먹지도 못하는 뼈다귀 하나를 지키기위한 루비의 정신적 소모가 참으로 안타깝다.

 

공을 가지고 뛰어 다니며 놀지도 못하고

좋아하는 내게 안겨 오지도 못하고

오로지 먹을 수도 없는 뼈다귀를 저렇게 지키고 앉아있다니....

 

나는 생각한다.

나도 '루비의 뼈다귀'를 가지고 있지나 않는지?

우리 모두 버려도 아깝잖은 '루비의 뼈다귀'를 지키기위해

루비처럼 우매하게 집착하며 주저앉아있는 건 아닌지...

 

나의 '루비의 뼈다귀'는 어떤 것으로 숨어있을까?

늦기 전에 찾아내어, 미련없이 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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