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오두막 食口

eunbee~ 2008. 11. 3. 19:43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부네요.

제법 세찬 바람이 휙휙 나뭇잎을 쓸고 지나갑니다.

가을 나뭇잎은 빛깔을 바꾸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네요.

며칠 전만해도 푸른기가 더 많던 오두막 잎새들이 이제는 완전히 누렇거나 붉습니다.

갈잎들은 바람에 우수수수~~ 소리내며 떨어집니다.

 

자두나무, 살구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그리고 매실나무들의 가을잎은

그리 예쁘다고 말 할 수가 없습니다.

산뜻한 단풍잎이나 잡목들의 노랗게 예쁜 가을잎에 마음을 빼앗기던 나는

은비오두막의 가을잎에 다소 실망하고 있답니다.

눈치없는 감나무잎은 수선스럽게 버석이기만 하고

가을의 정취를 가져다 주지는 않는군요.

 

버스럭대는 감나무 밑에 수북히 쌓인 못생긴 낙엽 위에

까치 여남은 마리가 먹이를 찾아 날아 들었습니다.

강아지 밥그릇에 먹이를 주었더니, 까치 한마리가 콕콕 쪼는 듯하다가

어디론가 신호를 보냈는지, 여섯마리...일곱마리...여덟마리...자꾸만 날아 듭니다.

영악스런 까치들은 남의 밥을 열심히 탐하고

순둥이 개들은 쪼르르 뛰어가 까치를 쫓아보지만,

뱃짱좋은 까치들은 꿈쩍도 않고 도둑밥을 먹습니다.

 

커다란 밤나무 두 그루가 하늘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 밑으로 무언가가 바스락 바스락 고양이 걸음을 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다람쥐네요.

꼬리가 길고 털이 뻗친걸 보니, 어쩌면 청설모 인지도 모릅니다.

볕바른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다람쥐까지의 거리가 제법 멉니다.

시내 한복판의 과수원에 다람쥐가 살고 있나봅니다.

어느해 봄날, 뻐꾸기 우는 소리는 들었지만, 다람쥐 얘기는 처음입니다.

 

이 오두막엔 식구가 여럿이군요.

예서제서 서성이다가 이 집으로 들어와 자리잡은 집잃은 개가 두마리,

두마리 중 갈색개가 낳은 검은개 한마리, 갈색개가 낳은 검둥개가 또 낳은 아주 어린  강아지 세마리,

갈색개는 할머니이자 이집의 터줏대감, 아니 대왕대비마마입니다.ㅋㅋㅋ

밥먹을 때도 할머니개가 식사를 마쳐야 그 다음 순으로 돌아 가지요.

할머니개와 함께 들어 온 하얀색개는 자기를 꼭 닮은 강아지를 낳아, 이제는 그 강아지도 큰개로 자랐습니다.

개 밥그릇의 먹이를, 놀러 온 이웃개까지 합해서 열마리도 넘는 개식구들이 개판을 벌인 다음에

까치들이 날아 들어, 다시 까치판을 끝내기도 전에, 쪼르르 다람쥐인지 청설모인지가 참견을 합니다.

감나무 밑에서 시작된 대가족의 식사는

밤나무 위의 다람쥐까지 포식을 하면 끝이납니다.

어쩌면 다람쥐는 그냥 그 식탁 언저리에서 떨어진 밤송이 속의 밤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은비오두막의 식구는 이렇게 대식구랍니다.

이 대식구들의 입을 즐겁게 해 주려면

돈을 많이많이 벌어와야 될것같네요. 하하하

바람이 몹시 부는 날에도,

볕바른 은비오두막엔 갖가지 생명들이 모여 따스한 식사를 하고

즐겁게 노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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