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편린들

'비를 내리는 나무' 소리

eunbee~ 2008. 8. 1. 11:55

성하盛夏

8월 첫째 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눈을 부비며 강을 만나러 갔습니다.

강가에는 안개 자욱하고,

안개에 휘둘리는 강 풍경들은 일분 일초마다 모습을 바꾸며,

사진기를 둘러 메고 바쁜 걸음으로 뷰포인트Viewpoint를 찾는 작가들의 마음을 희롱하고 있습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더구나 새벽 안개속의 강 언저리 풍경들은 초를 다투며 변화무쌍합니다.

 

안개속에 앉아있는 흰새 한마리

마치 천상의 운무를 타고 노니는 백조인양

안개를 타고 두둥실 떠 있네요.

물속에 잠긴 발은 쉴새없이 바삐 물을 저으련만

물위의 모습은 그림처럼 우아합니다.

일렁이는 물살에게 제 몸을 맡긴 새는, 참으로 평화로이 떠 갑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물안개는 쉴새없이, 모이고 흩어지고 피어오르고 사그러 들었습니다.

멀리로 내달리는 강줄기 끝에 머물던 시선을 거두고,

일어섰습니다.

바삐 셧터를 누르던 찍셔들도 모두 가 버렸습니다.

구름속에 숨은 해가 아마도 중천을 향하고 있나 봅니다.

쓰르르르르...쏴르르르르....

여기서 저기서 매미소리가 들립니다.

매미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나무밑을 지납니다.

은행나무숲에서도, 후박나무숲에서도, 느티나무숲에서도

매미들은 소나기같은 소리를 퍼부어 댑니다.

 

맴맴~우는 매미도 더러 있지만,

쓰르르르르 쏴르르르르르~ 쏟아내리는 빗소리를 내는 매미들은

마치 수천 수만마리가 한꺼번에 모여앉아  합창을 하듯, 소리소나기를 퍼붓습니다.

멀리있는 나무들에서 나는 소리는

'비를 내리는 나무'를 기우릴 때 내는 소리와 똑 같습니다.

내가 나무밑을 지날 때는 어김없이 한꺼번에 소리를 쏟아내어

환청을 듣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자꾸만 나무 위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이상스럽게도 소리가 잦아 들다가, 내가 나무밑을 지나면 한꺼번에 쏴르르르르하고 소리칩니다.

내가 환청에 시달리는가?

아니면, 내 耳鳴이 이렇게 정신 나가도록 커진 것인가?

잠시 두려운 착각에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만난 매미소리는 '비를 내리는 나무'의 소리와 똑 같았습니다.

멀리 칠레에서 야생하는 선인장 줄기속에 씨앗을 넣어 만든

'비를 내리는 나무'라는 이름의 자연악기?를

큰따님이 파리 유학 초기에 소포로 부쳐왔습니다.

1m쯤 되는 기다란 막대기를...ㅋㅋ

 

이 아침에

'비를 내리는 나무'를 기우려 빗소리를 내며

하염없이, 먼 곳의 비와, 먼 곳의 따님과, 먼 곳의 소식을 그리워 하던

그 시절의 기억을 떠 올립니다.

매미소리가 가져다 준 추억의 선물입니다.

 

'비를 내리는 나무'를 알게 해 준, 류시화님과 아들 미륵이도 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들에게 비를 내리는 나무 소리를 내는, 매미들의 합창을 선물합니다.

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아찔해 지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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