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편린들

달빛...마루...

eunbee~ 2008. 7. 11. 23:12

은비가 오던  날부터

우리는 거실에다가 이부자리를 펴고

은비랑 나랑 두마리의 강아지랑 모두 함께 모여 잔다.

누워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보면, 겨울이 여름이는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가

뽀드닥 뽀드닥 먹느라 바쁘다.

한낮엔 늘어지게 자고, 밤이 되고, 사람들이 자려고 하면, 부지런히 오가며 먹이를 먹고

쉬야도 하고....

 

은비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창밖을 본다.

달이 서산으로 살금살금 몰래 걷는 걸음으로 마실가고 있다.

오늘 밤은 또 누굴 만나러 가는 걸까...

강물에 제 모습을 빠뜨리고, 무심한 척 내 집 앞을 지나가는 반달.

우리는 놓지지않고 달을 붙잡아 세운다.

 

'할머니, 달빛이 참 예쁘네.'

 

'오-- 달빛이 예쁘다구?'

 

우리 은비는 아무래도 시인이 되려나 보다.ㅋㅋ

잠시 후, 달은 서산을 넘을락 말락, 산마루에 반쯤 엉덩이를 걸치고 있다.

 

'할머니, 달은 어디로 가는거야?'

 

'글쎄... 밤마다 어디로 갈까?  달에게 물어 보렴.'

 

'말도 안해 주고 벌써 가 버렸네. 할머니, 그런데 저기 별 한개가 있어.~'

 

우리가 잡아 둔 달도 그여코 제 갈 곳으로 가 버렸다.

폭염을 쏟아 붓던 염천의 해도 가고

수줍어 반쯤 얼굴 가린 달도 갔다.

또 하루는 이렇게 간다.

 

                                                             영화 [영원과 하루] 중에서...

 

은비가 잠이 들었나 보다.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는다.

강물에 빠져 물과 함께 출렁이는 가로등 불빛을 보며

아주아주 옛날 옛적을 기억해 낸다.

이런 여름밤이면, 까실한 삼베 이불을 덮고, 휘엉청 밝은 달을 보며, 마루에서 자던 생각...

내 부모와 우리들 형제들이 모두 정답게 살던, 마당가엔 가지가지 꽃들이 핀 작은 기와집.  우리 집...

제철 참외를 우물물 길어 올려, 커다란 양푼에 띠워 놓고, 엄마는 잠 들었다.

까실한 삼베 이불 위로 떨어지는 달빛을 매만지며,

언제 저 참외를 깎아 먹으려나...쉬이 잠이 오지않던 그때.

 

오늘도 달빛은 내 잠자리를 더듬고 가건만,

마루는 거실로 변했고, 삼베 이불은 외국에서 건너 왔다는 촉감 좋은 100% cotton으로 바뀌었다.

내 옆자리에서 잠들던 동생은 고등학교 교장으로 2년 후면 정년 퇴직을 맞이 할거고,

엄마 찌찌 물고 자던 막내 동생은 교수님이 되어, 방학 때마다 해외 출장으로 바쁘다.

안방에서 주무시던 내 부모님은, 하늘에서 나를 하마나 내려다 보시고 계실까?

이것이 인생이다.

 

이 밤, 내 곁에는

귀하고 귀한 은비, 오직 하나뿐인 내 손녀가

함께 달빛을 보며 이야기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은비도 먼 훗날, 서산으로 몰래 숨어 드는 달을 보며,

이 할미와의 오늘을 추억 할테지.

그래, 이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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