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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라도 위로하며

사평역에서 - 곽 재 구 -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일상 2023.12.09

그새 가을도 깊었네.

3월 중순을 넘기고 빠리로 떠나 9월 중순을 넘기고 내집으로 돌아왔는데 또 그새 11월 가운데에 서 있군. ***내 놀던 옛동산으로 걷기운동 나가 해저무도록 그 때의 정경들을 추억하는 일로, 가을을 즐겼지. ***한세월 멈추어, 하고싶었던 라인댄스. 다시 즐겁게 하니 얼마나 기쁜일인지! 그뿐이랴, 혼자 끄적이던 그림 그리기도 수채화 교실에 등록해 다시 일취월장 열공 모드.^^ 오호호~~ 즐겁고 즐거운 일. ***세상사 어지럽고 막막해도 좋은 것만 보고, 좋게만 생각하자.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거라면... *** 오늘 하늘이 어찌나 높고 푸르른지. 한 점 구름조차 없어. 먼 곳에선 좋은 소식 와 닿고. 작가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프랑스에서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하였다,라는... 프랑스에서..

일상 2023.11.10

추석날, 앞산 능선너머를 바라보다

대답하지 못한 질문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시대가 와도 거기 노무현이는 없을 것 같은데?" "사람 사는 세상이 오기만 한다면야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2002년 뜨거웠던 여름 마포 경찰서 뒷골목 퇴락한 6층 건물 옥탑방에서 그가 물었을 때 난 대답했지. "노무현의 시대가 오기만 한다면야 거기 노무현이 없다한들 어떻겠습니까?" 솔직한 말이 아니었어. 저렴한 훈계와 눈먼 오해를 견뎌야 했던 그 사람의 고달픔을 위로하고 싶었을 뿐. "대통령으로 성공하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욕을 먹을지라도 정치 자체가 성공할 수 있도록 권력의 반을 버려서 선거제도를 바꿀 수 있다면 그게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요?" 대연정 제안으로 사방 욕을 듣던 날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