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편린들

춘분 四色

eunbee~ 2008. 3. 20. 19:48

오늘이 춘분입니다.

강가에서 살게 되면서 부터 해가 뜨고 지는 것에,

달이 차고 기우는 것에

자꾸만 마음이 쓰여집니다.

날마다 뜨는 해가 같지 않으며

밤마다 차고 기우는 달 역시 같지 않습니다.

 

절기에 민감해 지며

자연의 변화가 크게 느껴집니다.

날씨에 따른 강물의 빛깔과 하늘의 표정과

바람의 냄새가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아 차릴 수 있습니다.

 

서산으로 지는 해는, 매일 한뼘씩 북쪽 산등성이로 기어올라

한달전 쯤에는 두 능선이 합쳐지는 오목한 곳으로 빠져 들어가던 해가

오늘은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를 넘어 숨어버렸습니다.

 

강물은 더욱 변덕이 심합니다.

명경지수로 산그림자와 하늘을 거울처럼  맑게 비추일 때도 있구요.

어제처럼 바람이 심한 날에는

자맥질 하는 흰새마냥, 白波로 일렁일 때도 있구요

강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게 할 때도 있답니다.

 

어느날엔가, 갑자기 우리집 앞 강물이 남서에서 북동으로 거슬러 오르고 있는 거예요.

뭔가 잘못 되었다 싶어 한참을 생각하며 강물의 흐름을 관찰했더니

그건 내 착각이었습니다.

바람이 북동쪽으로 불어서, 강물이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던겁니다.

우리집 앞강물이 어느쪽으로 흐르는지 잘 모르고 있을 때는 매번 혼돈스러웠습니다.

지도를 또 보고 또 보면서,

방향치인 내가 참으로 한심스럽게 생각되었지요.

 

 3월 20일 09 :36   햇빛 찬란한 춘분 아침

 

강원도 사동면이라는 골짜기에서 부터 천리/371Km/를 흘러 내려와

내동생이 사는 봄내를 지나 이곳으로 온 북한강 물과,

오대산 어느 정수리에서 시작되어

내 고향 마을 앞강을 지나 천리/375Km/를 그렇게 흐르다가

이곳으로 온 남한강 물은 

여기 두물머리에서 만나 두 강이 하나가 되어

한강으로 갑니다.

 

오늘 아침엔 해가 너무너무 찬란스러워

마음이 뒤숭숭했습니다.

한달전,아파트 옆구리에서 솟던 해는

어느새 왼쪽으로 서너발이나 치우쳐 달아나 있더군요.

멀리 보이는 동쪽의 가장 뾰족한 봉우리 위에서

춘분날 아침 해는 화살같은 섬광을 쏘아대며 하늘을 가로질러

눈부신 저녁 햇살로 강물에 잠기고, 서산을 넘었습니다.

 

춘분날엔 지는 해도 그렇게 눈부셨답니다.

노을도 없구요.

그냥 빛살을 쏘아대는, 바늘같은 햇살이었습니다.

그렇게 해가 가고 나니

푸른 저녁이 고요롭습니다.

 

아침 나절 강물 위에 앉아 있던 한무리의 새들은

온 종일을 그렇게 놀다가

저녁 해가 지기 바로전에, 한꺼번에 후루룩 날아 오르더니

십수마리씩 무리를 지어 편대를 짜고

북쪽으로 날아 갔습니다.

더러는 횡대로, 더러는 종대로, 어느 무리는 줄도 못 맞추고

어느 무리는 V자형 편대를 지어

훠얼훨 북쪽으로 가는 것을 바라보며

겨울 철새 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얀 새들은 아직도 강물 위에 앉아 있군요.

그들은 鳥安마을에 오래오래 묵으려나 봅니다.

새들이 편히 살 수 있는 작은 섬이 있고, 이름도 鳥安이니

그들에겐 안성마춤인 장소이지요.

옛사람들은 마을 이름도 참 잘 짓습니다.

강건너 마을 이름이 '鳥安'이된 까닭을 너무도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강물이 얼었다고..

언제쯤 얼음이 풀리려나..

징징댔더니

한달도 못되어, 푸르디 푸른 강빛으로 춘분날 빛나고 있습니다.

수백마리의 겨울새는 북쪽으로 향해 날아 가버리고

푸른 저녁 그림자가 드리운 강물엔

봄 기운이 너울댑니다.

 

오늘밤엔 열사흘달이 휘엉청 밝을 테지요.

강물에 잠긴 달은

또 얼마나 이내 마음을

뒤숭숭하게 흔들까요?

강마을의 빛깔은 이렇게 시시각각 변합니다.

 

오늘은

무자년 춘분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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