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그러께의 눈송이처럼

eunbee~ 2016. 12. 28. 23:11

 

아주 오랜만에 만나게 된 친구뒤로 살짜기 다가가서

살포시 감싸안고,

"SJ야, 내가 누구~ 게"  

 

몇삼년이나 무심히 흘려보냈을까, 10년 가까이 됐을까.

SJ와 나는 오랜만에 따스한 포옹으로 만났다.

중학교 1학년적 내짝꿍, 이제는 나란히 서면 내가 한 뼘 이상 훌쩍 더 크(길)다.

6년을 한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던 우리. 그녀도 동문모임에  2년만이라고 한다.

띄엄띄엄 참석하던 것을 그나마 한동안 나오지 못하였더란다.

계절따라 살고픈 땅을 달리해서 사느라...ㅎ

 

어제는 연말 모임이라고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한 동문회였다.

나누고픈 이야기  듣고픈 이야기는 어쩜 그리도 많을까, 

오래묵은 情보다 더 애틋하고 편안한 건 없구나.

 

세월 뒤켠 어느 모퉁이에 숨어있던 오래된 옛이야기

*'그러께의 눈송이'처럼 가뭇 사라지고 없는 지금이건만

입과 마음은 부질없이 분주했다.

 

 

 

*그러께 -- 재작년.

(아래 은사님의 에세이집에서 자주 표현되는 '그러께의 눈송이, 그러께의 진눈깨비'...인용.

내 고향에서 자주 듣는 '그러께')

 

 

 

 

 

옛스승님의 책을 선물 받았다.

지난 봄 4월에 출간된,

유종호 에세이 <회상기回想記 - 나의 1950년>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그 해

특별한 상황속의 전시 이야기를 잔잔하고 조용조용하게,

소년의 그닥 별나지 않은 일상의 일기처럼 편안하게 읽히는..

 

은사님과 동갑인 열여섯 내 언니의 1950년,

내 엄마 아버지의 그 시간들 이야기.

귀에 익고 마음에 새겨진 내 고향만의 어휘가 주는 친근함이 있는..

 

남다른 감회로 읽었다. 

밖은 춥다던데,두문불출 왼종일을..

 

 

< ........

 

마스막재 쪽으로 가는 도중 선글라스를 끼고 스쿠터를 모는 청년이 지나갔다.

옷차림이 서울 사람과 다를 바없었다. 등산복 차림에 스틱을 짚고 걸어가는 중년 남자도 보였다.

가뭄으로 물이 줄기는 했으나 멀리 충주호의 파란 물빛이 경관을 돋보이게 했다.

고개 가까이 한센병 환자의 오두막이 있던 자리가 정확하게 어디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열여섯의 겁쟁이 사내아이가 여든 고개를 넘는 사이 강은 호수가 되고 고토故土의 상징이던 붉은 산은

초목 우거진 산림이 되었다. 지게도 달구지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절대 빈곤의 전근대는 교육 수준과 불행지수가 극히 높은 현대가 되었다.

마스막재에서 바라보는 시내에는 고층 아파트가 우뚝우뚝 활거하고 있었다.

거기서 시골은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서 내려온 립 밴 윙클에겐 이제 고향에서도

옛날의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애석하게 생각되었다.

반도의 겨울에서 삼한사온이 사라졌듯이,흔하디흔한 제비와 황새가 사라졌듯이,

길가의 미루나무가 사라졌듯이, 6. 25전에 볼 수 있었던 기막히게 새파란 가을 하늘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사라져간 것이 어찌 그뿐이랴. 그 시절 좋아하던 시인의 대목이

저절로 바뀌어 입가에서 맴돌았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은 아니러뇨. >

 

 

마지막 챕터 '그리던 하늘은 아니러뇨' 끝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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