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하늘길로 온 책

eunbee~ 2015. 5. 1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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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스님은 혜원스님을 시켜 열쇠를 가져오게 하여 종메를 풀었다.

종메는 고래(鯨)요, 종은 용뉴(龍紐)에 틀고 앉아 있듯이 용(龍)이다.

용과 고래의 한판 승부가 바로 타종이라는 것이다. 나는 생전 처음

타종의 경험을 하게 된다. 종소리는 과연 정념스님의 설명처럼 용과 

고래의 충돌이었다. 엄청난 충격이 전신을 강타했다. 단정하고 겸손한

모습과 달리 종소리는 높은 파도가 되어 온몸을 덮쳤다. 깨달음이란

우선 이처럼 자신이 깨뜨려지는 충격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옳다.

종소리는 나를 깨뜨리고 멀리 오대산 전체를 품에 안았다. 나는 나를

남겨 두고 종소리를 따라가고 있었다. 오대산 1만 문수보살의 조용한

기립(起立)이 감은 눈에 보이는 듯하다. 종소리는 긴 여운을 이끌고

가다가 이윽고 정적(靜寂)이다. 소리가 없는 것을 정(靜)이라 하고

움직임이 없는 것을 적(寂)이라 한다. 1만 문수보살은 다시 산천으로

돌아가고 세상은 적멸(寂滅)이다.


소리의 뼈는 침묵이라는 시구를 남기고 요절한 시인의 죽음이 생각났다.

지혜의 끝 역시 침묵이 아닐까. 그러나 내가 따라가 본 종소리의 끝은

침묵이 아니었다. 그것이 침묵이고 고요이고 적멸이긴 하지만 그곳에서는

감동의 '장'(場)이 펼쳐지고 있었다. 문수보살이 보현보살을 만나고 다시

비로자나불을 만나고 삼라만상을 만나고 이승과 저승이 만나는 거대한

만남의 '장'이 전개되고 있었다. 타종은 협소한 주아(主我)를 끊는 

탈주(脫走)이면서 동시에 더 큰 것과 만나는 접속(接續)이었다.

탈접동시(脫接同時)라 했던가.


(........)


***


내가 자주 언급하는 '향기로운 여인', 옛동료이자 가족같은 친구가 보내 온 책 중에 신영복교수님의

'변방을 찾아서'에 실린 글 중 우리들의 추억을 떠올려주는 부분을 옮겼다.


친구와 나는 산사를 가끔 찾아 밤을 지내며, 마음 공부도 하고 심신을 눕히기를 좋아한다.

추운날 청량한 대기 속에서 별빛을 바라보느라 손이 곱고 발이 시려운 것도 기꺼워했다.

마곡사인지 대흥사였는지, 수련 과정에 타종을 하는 시간도 있었기에, 신영복 교수님의 저 글을 읽으니

그때의 그 느낌이나 감동이 되살아 오른다.

송광사의 저녁 예불 시작을 알리는 법고 소리와 범종 소리는 얼마나 경건하고 장엄하던가,

그녀와 함께 찾아들어 밤을 보낸 대찰이 그 몇 곳이었는지.


향기로운 도반은 차를 몰아 먼길 달려서 우리 서로 좋아하는 산사에 머물며

마음공부 함께 해주는 것뿐아니라 저렇게 책도 보내주니, 책 속에서 그녀의 향기를 되새기고

내 삶의 축복인 그녀 있음을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아름다운 인연이여, 고마워요. 

고맙고 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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