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詩 - 염명순

eunbee~ 2014. 9. 20. 09:47



쏘공원 그랑샤토 하늘을 나는 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염 명 순





상수리나무 곁에 서면

예전 다방에서 듣던 플루트 소리로

안개가 밀려오고

그쯤에서 너는 상수리나무 그림자를 파고 있었다


창가에 서면

러시 아워에 붙들려 빠져나오려는

가을 햇살의 몸부림으로

상수리나무 몇 그루의 흔들림으로

다가오는 네가 보인다

조금씩 엷어져 이제는 투명해진

하느님 속살의 반짝이는 살비늘이 보인다

그리고 

서로를 밀어버려 구름 하나 남지 않은

하늘도 보인다


하늘 깊은 곳에서 새 한 마리가

길게 노을을 끌며

바람 부는 쪽으로 날아간다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사랑은 상수리나무 몇 그루의 흔들림으로 시작되어

새 깃털에 묻은 잿빛의 무게만큼

깊어지는 것인지

이상도 해라

네 곁에 서면

스스로에 갇혀 미로에 접어드는

플루트 음색의 안개가 보였다

그쯤에서 너는 상수리나무 그림자를 접어들고

떠나고 있었다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가끔은 네가 보고 싶어

고개 숙이는 가을의 목덜미쯤에서

나는 기다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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