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을 지나 며칠 후엔 중복, 한여름의 절정에 이르렀어요.
서녘에 누운 황금빛 햇살이 저녁 10시가 지난 후에도 한참동안이나 마음 설레게 하더니
어제 그제는 어느새 아홉시 반이면 이미 해는 서산을 넘어버리더랍니다.
세월이 너무나도 숨가쁩니다.
한여름 속에 가을은 이미 스며들어 있어요.
바람도 가을 냄새를 담고 있으니 아침 저녁 참으로 쓸쓸한 기운이 맴돈답니다.
- 예까지는 엊그제 써둔 거예요. 포스팅 한꼭지도 제때에 못올리네요.
게으름이 무르익었습니다. ㅋ 그래서 오늘은 이틀분 올립니다. ㅎㅎㅎ-
***
시인(詩人) 2
- 첫날의 시인
기 형 도
바다를 향(向)한 구름이 살았다.
물새들이 가끔씩 그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혹은 그냥 모른 척 지나가기도 하였다.
구름은 일천(一千)일을 바다를 향(向)해 살았다.
그 사이에 뭍에서는 꽃이 피고 새가 울고 일천(一千)명의 어부(漁夫)가 태어났다.
.........
바람이 심하게 부는 어느 겨울날,
구름은 귀퉁이부터 조금씩 허물어져 눈이 되었다.
일천(一千)일을 내린 눈은 바다 가장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아
일천(一千) 마리 고기 떼가 되었다.
일천(一千) 명의 어부(漁夫)는 그물을 던졌다.
꼬리와 지느러미는 그들이 먹고, 내장은 처자(妻子)에게 주고
나머지는 버리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어느 겨울날,
어부(漁夫)들은 일천(一千) 해리 먼 바다에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일천(一千)일을 물귀신으로 헤매이다, 그들은 한 덩어리로
하늘에 올라가 구름이 되었다.
.........
바다를 향(向)한 구름이 하나 살았다.
어느, 바람이 심하게 부는 겨울날
한 어부(漁夫)가 그물에 걸리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의 그림자를 떼어갔다.
눈(雪)은 바다를 메울 듯이 내리었다.
***
가을바람처럼 선선한 바람이 창문 밖에서
해맑은 몸짓으로 정오의 양광을 쓰다듬는다.
내 귀에선 자꾸만 매미소리가 이명처럼 들린다.
아니, 이명이 매미소리로 변성한다.
오늘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내 눈으로 들어온 삼복의 햇볕은 언제나 내 귀에서 매미가 되었지.
한여름의 바람은 오늘도 가을바람처럼 불며 지나간다.
아, 가을인가봐~ 내 입에서 자꾸만 헛발질치던 말이 웅얼웅얼 비어져 나온다.
달아나는 시간들이 너무나 숨차다.
한여름 속 가을 예감.
2014. 7. 27 정오를 넘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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