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느티나무가
신 경 림
고향집 느티나무가
터무니없이 작아 보이기 시작한 때가 있다.
그때까지는 보이거나 들리던 것들이
문득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나는 잠시 의아해하기는 했으나
내가 다 커서거니 여기면서,
이게 다 세상 사는 이치라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고향엘 갔더니
고향집 느티나무가 옛날처럼 커져 있다.
내가 늙고 병들었구나 이내 깨달았지만
내 눈이 이미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진 것을
나는 서러워하지 않았다.
다시 느티나무가 커진 눈에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다.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져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다웠다.
초원(草原)
신 경 림
지평선에 점으로 찍힌 것이 낙타인가 싶은데
꽤 시간이 가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무토막인가 해서 집어든 말똥에서
마른풀 냄새가 난다.
짙푸른 하늘 저편에서 곤히 잠들었을
별들이 쌔끈쌔근 코 고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다.
도무지 내가 풀 속에 숨은 작은 벌레보다
더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가 가서 살 저세상도 이와 같으리라 생각하니
갑자기 초원이 두려워진다.
세상의 소음이 전생의 꿈만 같이 아득해서
그립고 슬프다.
* 내 고향 시인의 詩가 오늘따라 새롭다.
.......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
캐보나마나 자주감자. 라며 노래하는 내 고향 시인과
다시 느티나무가 시인을 나는 좋아한다.
더위가 몰려왔다는 오늘
해질무렵
오랜만에 내 나무에게로 가 보았다.
나무는 여전하게 옆친구와 손잡고 서 있구나.
나무 아래 앉으니 따순기운이 등허리로 전해 온다.
햇살을 모아 두었나 보다. 내가 올 기척을 알고.
언젯적처럼 '보리수' 노랠 부르지도 않았고
언젯적처럼 바람소리에 귀담지 않았다.
그냥... 그 따스한 내 나무의 온기를 내 몸 속으로 들이며
하늘을, 먼 하늘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하늘엔 하얀 비행기 날고
연둣빛 잉꼬들 후루루 날더니..
까그매 한 마리가 구슬피 울고 지나갔다.
**
아들네 강아지 여름이는 눈도 보이지 않고, 먹을 것도 마다한단다.
아버지제사 지낸후 제사밥 둘이 먹기 쓸쓸하다고 친구 부부가 와서 함께 먹어주더란다.
살고, 죽고, 기억하고, 그리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일.
슬프구나.
2014. 7. 17.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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