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편린들

군자는 아직 멀었나요?

eunbee~ 2013. 10. 6. 10:48

 

파리 리옹역. 지난 8월 21일에 조카랑 함께 갔던....

 

 

 

1박 2일의 외출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신토불이 진짜배기 여주땅콩 두어 됫박이랑, 용인 사돈어른께서 텃밭에서 캐내신 고구마 네 개 등등의 무개가 만만찮아

빈 자리를 두리번 거렸다. 약간쩍벌남 옆 자리가 비어있기는 한데, 망설여졌다.

그래도 앉는 것이 낫겠다 싶어 살그머니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스맛폰 열어 '가을 소나타'를 읽는다.

다음 역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약간쩍벌남께서 일어나시며, 방금 타신 허리굽고 쪼글쪼글 늙으신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체구 작은 할머니는 등에 검은색 백팩을 짊어지신채 그냥 앉으신다.

할머니는 자리 양보한 중늙은이에게 미안한지 무척 신경을 쓰신다. 어디까지 가시냐, 미안해서 어쩌냐..

진심으로 고마워하시고 미안해 하시는 마음이 역력하다.

백팩을 내려놓으시려나 보다. 그 할머니의 등에 매달린 가방이 마음 쓰였는데 다행이다 싶어서

가방을 벗겨 드렸다. 할머니는 부시럭 거리며 무언가를 꺼내더니 다시 가방을 매신다.

낱개 포장된 작은 사탕 한 개를 자리양보한 남자에게 건내며, 또다시 미안하고 고마운 표정으로 말씀을 하신다.

그리도 고마웁고 미안하실까. 할머니의 순박한 마음과 모습이 내게로 와 짠하고 찡하게 맺힌다.

그 당연한 일이 저리도 고마우실까.

 

나는 엄마 샤로트와 딸 에바의 긴긴 대화에 정신을 팔고 있다.

옆 자리 할머니의 누군가에게 묻는 무언가의 말들이 귓바퀴를 맴돌고, 샤로트와 에바의 대화가 눈에 어른거린다.

두 상황은 서로 얽혀 어느 하나도 내게 명료하지가 않다. 읽는 일에 집중하여 다시 '가을 소나타'에 빠진다.

지하철은 멈추고 다시 달리고... 할머니의 무슨 말인가는 지하철이 멈출 때마다 어렴풋한 발음으로 내 귀를 스친다.

스맛폰 독서를 잠시 내려놓고 할머니의 말에 귀를 모았다. 그 할머니가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자꾸만 건내보던 말은

' 군자는 아직 멀었나요?'였다. "할머니, 군자역에 도착하면 제가 가르쳐 드릴테니 편히 계세요." 그렇게 말해 드리고

군자역 서너 정거장 전부터 나는 할머니에게 군자역이 몇정거장 남았는가를 알려드리며, 안심케 했다.

할머니의 모습에서 머잖은 날의 나를 상상하며, 한숨을 몰래 쉬었다. 깊은 한숨이 스스로를 서럽게 했다. 에혀~

 

양보받은 자리가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자꾸만 남자에게 마음쓰던 할머니, 군자역에서 내리셨다.

작은 키, 꼬부라진 등, 쪼글거리고 검게 그을린 얼굴, 등에 매달린 초라한 작은 가방.

작고 작은 것에 그리도 감사하고 미안해 하시는 그 할머니,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한꺼번에 후루룩 읽어버린 듯한

뻐근함을 주고 내리신 할머니. '군자는 아직 멀었나요?'의 잦은 질문이 가져오던 그할머니의 세상에 대한 불안함이

나의 예측할 수 없는 내일에 대한 불안함이 되어 잠시 착잡해졌다.

 

나도 강남구청역에서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고, 내 집으로 오는 동안 읽던 '가을 소나타'는 끝났고, 그 윗글까지 읽을 수 있었다.

내 아파트를 들어서니, 포스트함에 <2013년도 60세 이상 주민 독감 예방접종 안내>가  분당 보건소 소장 이름으로 발송되어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봉투를 개봉해서 내용을 확인하며, '참 좋은 나라군,' 중얼거리며 내집 현관문을 들어서는 내 마음은

쓸쓸하고 서럽고 내일에의 내 세월이 불안하고....그랬다. 에혀~

 

'군자는 아직 멀었나요?'

글쎄요. 우리네 저무는 인생들에겐

우리가 하차해야 하는 역이 그리 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우.

 

 

 

 

 

기별이 닿는가

 

                               김 소 해

 

네 별에 여직 못 닿은 부음의 기별 있어

광년(光年)을 헤아리며 자박자박 가고 있다

저 혼자

걷는 길이라

목선처럼 더디다

 

화석으로 남은 편지 또 그리 긴 문장이다

문장에 인(燐)불을 밝혀 낱낱이 읽을 동안

별똥별

아~ 그제서야

그 기별이 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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