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편린들

익명성의 행복

eunbee~ 2013. 8. 19. 09:10





Happiness from anonymity


이윤기님의 '나비 넥타이'를 읽다가 건져올린 말이에요.

사람들은 낯익은 사람들 틈보다는 낯선 곳에서 더 자유롭고 편안해지나 봐요.

나야말로 그런 감정을 매우 짙게 느끼는 편이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예요.

내가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떠나와 스무하룻밤을 유럽침대에서 자면서

룰루랄라 즐겁게 돌아다니다가, 스무이틀째 되는 날 드골공항에서 KAL기에 탑승했지요.

어머나~

기내에 들어서서 좌석들을 채운 한국사람들의 시선과 마주치자

답답하고 불편하고 기가 죽고... 그 형언키 어려운 심적상황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스스로도 놀란 그 답답증. 나를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표정들이 주는 이상한 공포.

예기치 못한 그 감정에 내 스스로도 얼마나 놀랐는지요.

친숙한 얼굴들, 나를 빤히 읽어내고 티잡을 것 같은 눈초리들,

너무 잘 알아서 안느껴도 될 것까지 모두 감지되고 신경써야하고 눈치봐야 하는...그 불편함.

그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마음은 답답하고 불편하구나,뿐이었지요.


29년전 이야기. 그로부터 세월이 그리도 많이 흘렀건만

나는 아직도 한국으로 가는 기내에 들어서면 그때의 그런 기분이 되고는 합니다.

그 강도가 한결 낮아지고, 충격도 사라졌지만요.

며칠 후 나는, 한국으로 향하는 여객기 어느 좌석에 앉아 '익명성의 행복'으로부터

추방당하는 불행스런 감정에 젖어 있을 거예요.


무얼 입든, 무얼 하든, 어디에 앉든 서든,

내 걸음새가 어떠하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이국땅. 우리와는 다른 문화적 분위기.

좋은 말만 들리고, 좋은 표정만 읽히고, 친절한 사람들만 만나도 되는 곳.

어차피 들리지않으니 전혀 신경쓰여질 일 없는 곳.

내가 반년동안 누려온 익명성의 행복이 이제 끝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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