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바나나, 체리..들은 나를 슬프게 해

eunbee~ 2013. 6. 18. 22:59






밤의 산책


                                                        염 명 순



 길 양편의 가로수들이 일렬종대로 서서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국민학교 시절에 초 칠한 복도를 걷듯이 뒤꿈치를 들

고 살며시 걷는다 바람이 스치는가 했는데 무 하나가 

들리자 모든 나무들이 고개를 한 방향으로 돌리고 기립박

수를 친다 디어 밤이 온 것이다! 밤의 모습을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나 밤의 심장은 매우 천천히 뛰며 긴

숨을 내쉴 때마다 둥글고 완만한 능선의 모래언덕이 한없

이 펼쳐졌다 흩어진다고 한다 내가 가만히 서서 밤의 맥박

리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모래는 내 발밑에 쌓여 서서히 

내 온몸이 따스한 모래 속에 잠겨들고 내 머리카락이 밤의 

가늘고 긴 섬망에 감기기 시작할 때 멀리서 낙타를 탄 

의 방울소리가 들려왔다 수없이 많은 밤을 건너온 그들

은 말이 없고 대상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걷는 내 어깨 위로 

별 하나가 떨어져내린다 어느 해 여름엔가 죽었다는 이름

도 아슴한 내 소꿉동무의 별이다 별 하나가 뒤척이자 하늘

의 모든 별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떨어진 별들은 바삭바삭

하다 성탄절 트리처럼 반짝거리는 별들을 온몸에 달고 나

는 사막을 건너 집으로 돌아온다 비로소 나는 불 켜진 창

                                                       이 된 것이다 





부엌 창밖으로 보던 어제의 쏟아지는 빗줄기




어제 아침 나절에 스콜처럼 비가 쏟아졌다. 

그 시간은 10여분이나 되려나, 

천둥번개가 정신 어지럽게 우당탕 번쩍거리더니

굵은 빗줄기가 솨아~~

금세. 거짓말 처럼 환하게 개인 하늘엔 햇볕이 한가득.

그러더니 어느새 다시 먹구름이 몰려와 일식을 맞이한 대지처럼

온 사방이 어둑어둑 회색빛으로...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 비가 쏟아진다. 스콜처럼 마구 쏟아내리는 빗줄기가 시원하고 경쾌롭다.

금세 비는 그치고 해가 난다. 참으로 변덕맞은 날씨.


아침 나절을 그렇게 보내더니, 오후에도 구름과 해가 번갈아 대지를 덮씌웠다.

저녁에 다시 비가 부슬부슬. 은비엄마가 케밥을 사러 간다고 차를 몰고 나간다.


케밥만 사온 것이 아니라 바나나를 들고 왔다.

메트로역 앞에서 아랍 청년이 빗속에 서서 바나나를 팔고 있더란다.

그 빗속에 단돈 몇 유로를 벌겠다고 바나나를 펼쳐놓은 작은 좌판 옆에 선 그의 태도가

그리도 건강해 보이더란다. 그래서 케밥 사고 남은 1.5유로 어치의 바나나를 샀단다.


은비엄마는 얼마 전 샹젤리제에서 우리가족들이 저녁을 먹을 때에도 과일을 사들고 왔었다.

메트로역 앞에서 아랍인 둘이 과일을 팔기에 사 왔다고 했다.

그들의 잘 살려고 애쓰는 '의지'를 그렇게라도 도와줘야 한다면서...

은비엄마는 자기를 감동시키고 각성시키는 것은 어느 사람의 '의지'란다.

살려는 의지, 해내려는 의지, 악 속에 놓여져도 착하려는 의지,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의지. 현실보다 나아지려는 의지..

아랍에서 온 페이퍼 없는 사람들은 바나나 몇송이를 팔아서라도 

정직하게 먹고 살려는 의지가 존경스러우니 그들의 의지에 응원을 보내야 한단다.





은비가 케밥을 먹다가 남기자, '이렇게 먹으면 안돼. 빗속에 서서 바나나 몇송이를 파는

아랍 청년들을 생각하며 반성해야 돼. 깔끔하고 알뜰히 다 먹어.' 라며 타이른다.


페이퍼가 있는 아랍청년은 쓰레기 버리고 치우는 일을 하고

페이퍼 없는 아랍청년들은 그마져 할 자격이 없으니 

에펠탑 아래서, 몽마르뜨르 언덕에서, 메트로역 부근에서 보잘 것 없는 기념품을 손에 들고

호객을 해야하고, 과일 몇 알을 놓은 좌판 옆에서 웃음을 보내는 거란다.


세느강으로 날아와 먹이를 찾는 갈매기 조차 안쓰럽다는 은비엄마.

그애도 이방인이다. 나는 그래서 내딸이 바나나 몇송이 과일 몇개를 들고 오는

그 손이 안쓰럽고 슬프다. 언젠가 한국뉴스시간에 비가 쏟아져 내川를 이루며 흘러내리는 차도의 빗물을 보며

은비엄마가 말했었지. '나는 저런 비가 보고 싶어서 한국엘 가고 싶어지기도 해.'

홍수를 이루는 억수같은 비마져 그리워지는 이역만리 남의 땅에서의 생활.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산다고 해도, 여기는 우리를 이방인이게 한다.


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고 조국을 등지고 온, 가난해서  힘든 사람들. 

그들을 자꾸만 뒤돌아 보는 내딸도 이방인이다. 나는 내딸의 그런 마음이 슬프고... 가엾다.


어제의 소나기와 은비엄마 손에 들려진 바나나 몇 송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했구나.

에혀~ 산다는 건 왜 이런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