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만추

eunbee~ 2012. 10. 3. 12:09

만추 (2010)

감독 김태용

출연 탕웨이Tang Wei, 현빈

 

시애틀의 한적한 주택가.

화면은 마치 한폭의 수채화인양 푸른빛을 띤 은회색톤으로, 길도 건물도 하늘도 차분하고 간결하여,

적막하다.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여자, 겁에 질린 표정, 얼굴은 멍투성이.

갑자기 뒤돌아서 오던 길을 뛰어간다. 현관문을 밀치고 들어서서... 쓰러져있는 남자를 살핀다. 죽었나 보다.

죽었다.

여자는 놀라고 당황해서 넋이 나간다. 주변의 편지들과 사진들을 황급히 쓸어모은다. 찢어서 천천히 씹어 삼킨다.

밖에서는 경찰차에서 들려오는 사이렌소리.

이렇게 영화는 시작된다.

 

첫화면의 색조부터 이영화의 분위기를 암시하고, 영화 전체에서 보여지는 그 색조가 참으로 좋다. 담백하고 간결한 화면구성은

잘 그려진 담백한 수채화같다. 푸른빛을 띤 은회색톤의 화면은 이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안개덮인 장면과 함께 영화를 

몽환적인 고급스러움으로 만들어 낸다.

내 취향이라서 그리보이는지도 모르겠다.

 

 

7년동안 수인번호 2537로 감옥에서 지내온 여자는 어머니의 부음을 받고

사흘간의 휴가를 얻어 시애틀로 향한다.

어느 휴게소에서 쫓기는 듯한 한남자에게서 버스요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고, 그런 흔한 에피소드로

순전한 어거지처럼 시작된 인연이 이어진다. 우연은 필연을 낳는다고 하지 않던가. 하핫

이야기를 이어가는 탄탄하고 섬세한 시나리오도 수준급이다.

이작품에는 화면이나 대사나 군더더기가 없다. 세밀하게 계산되고 정제된 대사, 영화를 구성하는 감독의 미장센은 나를 감탄케 했다.

 

 

대사는 영어, 일어, 한국어가 섞여 쓰여지며, 대부분이 영어가 사용된다.

고정쇼트를 많이 사용하여 정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내며 영화를 차분하게하고, 관객의 생각과 느낌의 시간을 충분히 배려하며

포커스를 흐림으로서 (쉘로우 또는 소프트 처리) 신비하고 낭만스런 일련의 몽환적 분위기를 가져온다.

난 이런 류의 영화구성이 좋다.

또한 채도가 낮은 몽환적인 질감의 색채를 사용하여 영화는 많은 신이 '균형잡힌 구도의 수채화'로 다가온다.

 

 

탕 웨이의 표정연기 또한 일품이다.

나는 탕 웨이라는 배우를 '색 계'에서 처음 봤는데, 그 영화에서처럼 '만추'에서도 그녀의 표정은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무겁고 깊이있고 더러는 단호함과 격렬함이 담긴 표정연기로 이영화를 완성시킨다.

 

 

이영화에서는 버스를 타는일, 휴게소에서 쉬면서 벌어지는 일들, 차들이 달리는 도로의 원경이 인상적으로 담겨져 연출되고

그러한 장면들이 영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플롯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때로는 로드무비 같다는 느낌마져 드는 영화다.ㅎㅎ

위의 사진도 휴게소에서의 한장면으로 멀리 강인지 바다인지는 안개로 덮여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도 휴게소의 카페에서 여자가 남자를 기다리는 장면으로 페이드아웃되니... 로드무비같은 인상이...ㅎㅎ

 

 

영화 중반부에서 여자(애나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주인공)와 남자(이라고 불리우는 현빈이 맡은 역. 이들의 통성명 장면도 일품이다

영화가 중반쯤으로 가서야 통성명을 하게 되는데....영화를 보며 확인 할 것,ㅋㅋ)가 놀이공원에 가는 장면.

판타지를 연출한 김태용감독에게 환호를~~~ㅎㅎ

 

두 남녀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범퍼카에 앉아있는 애나와 훈이 그사람들의 대화에 덧씌워 말을 한다.

처음에는 '훈'이 남녀의 대사를 변성을 하며 모두 하고... 그 뒤엔 '애나'가 여자의 대사를, '훈'이 남자의 대사를 그들과 같은 입모양으로

함께 한다. 이색적인 설정이다.

그 이후의 장면은 그 두남녀가 헤어지는가, 했더니 다시 가까이 와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느린화면으로, 애절한 몸짓으로...

'그녀에게'라는 알모도바르 영화에서의 피나바우쉬의 춤장면들이 떠 올랐다.

나는 이런 영화속의 춤 장면 삽입이 참으로 좋다.

 

 

이 영화에서도 판타지를 불러오는 춤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일상 속에서 [영화]를 감상한다는 일은 일종의 환타지가 아닐까,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기에 내가 보는 영화는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렇고그러한 일상들을 가끔은 판타지속으로 밀어넣는 일 중의 하나가 [영화]보는 일이라면

그 영화들은 아름답고 좀더 판타스틱할 필요가 있다.

 

 

이영화에서 재밌는 장치 또 하나,

'훈'이 아는 중국어라고는 '하오'한마디 뿐이란다. 그러면서 '애나'에게 하오의 의미가 '좋지 않다'라는 뜻이냐고 묻는다.

중국인 '애나'는 하오는 좋다란 뜻이라고 말해준다. 그러면 나쁘다의 뜻은? 훈이묻는다. '화이'라고 애나가 답한다.

그 하오와 화이라는 두음절의 단어를 이용하여 '애나'가 자기의 현실을 고백하게 하는 장면들을 만들어내는 장치로 쓰여진다.

재미있는, 재치있는 발상이다. 그것도 영화가 중반을 넘기고, 그들이 만나게 된지가 한참인 시점에서...ㅎㅎ

 

 

영화를 끝까지 보다보면, '애나'라는 여자는 숙명에, 또는 직면하는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매우 순한 성정의 여자다.

어쩌다가 실수로(부부 싸움 끝에) 살인자가 되었지만, 그녀는 자기 앞의 인생이나 자기 앞에 놓여지는 일들에 매우 순종적이다.

그러한 '애나'라는 여자를 연기하는 탕 웨이라는 배우는 감동스러울 정도로 적격이었고, 김태용감독은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이다. 하핫

애나와 훈이 휴게소의 허허벌판에서 오랜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역시 탕 웨이는 베드신과 키스신의 명수구나' 했다. 색계의 베드신만큼이나 이영화에서의 키스신도 얼마나 실감있는 연기인지...

 

마지막 장면.(바로 위 사진)

휴게소에서 훈을 잃어버린(사연이 있지만 여기선 생략)지 2년 후,

감옥에서 출소한 애나가 그들이 마지막으로 헤어진 휴게소로 온다.

휴게소 카페의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버스를 보며.. 카페의 문이 여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남자를 기다린다.

오리라는 기약도 없지만.... 그러나 어쩌면 꼭 올지도 모르는 기다림.

커피를 마실까? 케익을 먹을까? ....그러나 그녀는 포크를 다시 놓고, 그를 기다린다. 혼자 가만히 인사를 해보며..."오랜만이에요"

그리고 그녀는 '흠~'하면서 살짝 웃는다. 그리고 화면은...서서히 페이드아웃~~~ 

 

까맣게 변한 화면을 한참을 응시하면서 나도 그남자를 기다린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며 여자의 가냘픈 노래가 흐른다. 허밍으로 바뀐다.

나는 그때까지도... '애나'와 함께 남자를 기다린다.

 

그리고...

아직도 기다린다.

 

김태용 감독.

 

이 영화 외에 어제 그제... 내가 본 영화중에서 권하고 싶은 영화, [써니], [푸른 소금]

재미있게 만든 영화. 볼만하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