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편린들

회색빛 날에

eunbee~ 2012. 7. 3. 22:07

 

 

 

되새 떼를 생각한다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때

바람을 신으로 모신 유목민들을 생각한다

별들이 길을 잃을까 봐 피라미드를 세운 이들을 생각한다

수백 년 걸려

불과 얼음을 거쳐 온 치료의 돌을 생각한다

터질 듯한 부레로 거대한 고독과 싸우는 심해어를 생각한다

여자 바람과 남자 바람 돌아다니는 북극의 흰 가슴과

히말라야 골짜기 돌에 차이는 나귀의 발굽 소리를 생각한다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때

오두막이 불타니 달이 보인다고 쓴 시인을 생각한다

내 안에서 퍼붓는 비를 맞으며 자라는 청보리를 생각한다

사랑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사람보다

사랑하고 상처받는 사람을 생각한다

불이 태우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심장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깃 가장자리가 닳은 되새 떼의 날갯짓을 생각한다

뭉툭한 두 손 외에는 아무 도구 없이

그해의 첫 연어를 잡으러 가는 곰을 생각한다

새의 폐 속에 들어갔던 공기가 내 폐에 들어온다는 것을 생각한다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때

겨울바람 속에 반성문 쓰고 있는 콩꼬투리를 생각한다

가슴에 줄무늬 긋고서 기다림의 자세 고쳐 앉는 말똥가리를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면서

둥근 테두리가 마모되는 동전을 생각한다

해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기 위해

이곳에 왔음을 생각한다.

 

詩....류시화  제3시집에서

 

 

 

 

 

흐린날이라 밖이 빨리도 어둑어둑해진다.

빗소리가 반가워 우산을 펴들고 이른 산책을 나선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경쾌해서 기분이 좋더니, 비가 금세 그친다. 에잉~

 

늘 산책을 하는 코스를 한바퀴 돈다.

날이 아직은 밝으니 사방이 잘 보인다.

물오리도 노닐고, 어느 바람에 쓸렸는지 갈대들이 누워있구나.

 

3km쯤 걸으니 날은 어두워지고, 안개가 뽀얗게 탄천위를 채운다.

비도 좋지만, 살짝 드리워진 밤안개도 좋구나.

사람들은 산책을 하면서도 어쩜 그리 이야기가 많은지.

그들을 피하기 위해 걸음을 늦춘다.

 

이렇게 하루종일 회색빛이었던 하루를 보낸다.

 

2012. 7, 3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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