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여성학자 박혜란의 생각모음' 이라는 부제가 붙은
[나이듦에 대하여]라는 책의 일부를 옮긴 것입니다.
이 사진을 찍은 영종도의 고욤나무골에서 영종도 미남 님이랑 행복하게 사시는 블로그 친구에게
이 사진과 글을 선물하려고 옮겨놓았답니다.
[ 겨울 바닷가에서 ]
겨울 바다를 보러 갔다.
한동안은 해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동해에 갔었는데 올 정초에는 서해로 방향을 틀어 대천으로 향했다.
뜨는 해보다 지는 해를 보고 싶었다. 동행은 한 사람, 남편이었다.
도착한 날 저녁부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이튿날에는 하루 종일 함박눈이 쏟아졌다.
온 세상이 하얗게 덮였다.
언젠가 보았던 추리영화에서처럼 사흘 동안 꼼짝없이 숙소에 갇혔다.
차를 타고 멀리까지 못 나가는 대신 저녁 무렵이면 매일 눈 쌓인 해변을 걸었다.
하지만 나흘째 되는 날에도 구름 때문에 해를 볼 수 없었다.
동해에서 해돋이를 보는 걸 행운으로 치듯이 서해에서도 일몰 구경은 역시 행운에 속하는가 보았다.
(중략)
나이 들면 결국 친구와 남편밖에 없으니 있을 때 서로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남들한테는 교과서를 외우듯이 힘주어 말하면서 정작 나는 구제불능이다.
그래도 다행히 친구는 한집에서 살지 않으니까 어느 정도 감정 조절이 가능하다.
남편은 언제라도 감정의 폭력에 휘둘릴 위치에 있다.
젊었을 때는 나중에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면 남편하고 친구처럼 오순도순 살 줄 알았다.
(중략)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깔깔대며 흘려들었을 말 한마디에서도 뼈를 찾아내고 즉각 비수를 품은 말로 답한다.
난 그동안 내가 남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오해였음을 깨달았다.
내가 '있는 그대로'라고 생각했던 남편은 실은 내'틀 속에 있는 그대로'의 남편이었다.
(중략)
사소한 부딪침이 늘어나는 것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라는 걸 안다.
마음을 긍정적으로 먹으면 순식간에 풀릴 문제라는 것도 잘 안다.
행복론에서 되풀이해 강조하듯 '지금 여기'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도 너무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계속 머물러 있는 한 나는 그게 잘 안된다.
성숙한 사람들은 앉은 자리에서도 자신을 다스릴 줄 안다는데 난 어림없다.
나이를 헛먹었는지 나는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추스려지는 미련한 존재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길로 나선다.
집에서는 못마땅했던 남편이 길 위에서는 다시 친구로 보인다.
(중략)
친구들 중에는 자기네 부부는 집에서는 사이좋게 지내는데 어쩐 일인지 여행만 떠나면 대판 싸우고
결국 말도 안하고 지내다가 돌아온다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어떤 이들은 그런 일을 몇 번씩 겪은 후부터는 아예 부부동반 여행은 생각도 안한단다.
여자친구끼리 가는 게 훨씬 편하고 재미있단다. 그래서 그런지 곰국을 한 솥씩 끓여 놓았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여자친구들끼리 여행 다니는 팀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여행기간이 긴 해외여행의 경우에는 더 많다.
"어떻게 안 싸우세요?" 노상 싸운다는 여성이 물었다. 왜 안 싸우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는
순간 생각보다 말이 앞서 튀어나왔다. " 밥을 안 해도 되는데 왜 싸워요?"
(중략)
그렇게 찾아온 곳이 대천이다.두어 시간 겨울 바닷가를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아득한 저편으로 사라진 그리움이 되살아난다.
그때는 나중에 나이 들어서 이렇게 함께 바닷가를 걸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꿈꾸었었다.
젊음은 정열이 큰 만큼 불안도 컸기에 미래를 점칠 수 없었다.
이리로 올 때는 커다란 불덩이가 바다로 풍덩 빠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화끈하게 사라지는 모습은 참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구름에 형체를 가린 해가 슬그머니 사라져 가는 모습도 남루하지 않았다.
구름 밑으로 부챗살처럼 빛을 뿌리며 내려앉는 해는 상상보다 훨씬 멋졌다. //
사진 : 내가 디카에 담아온 영종도 을왕리의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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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왕리의 저녁바다는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아름다운 곳에서 늘 아름다운 풍경과 마음을 우리에게 전해 주는 블친님이
내일도...내년에도...먼먼 훗날에도... 오늘들처럼 따스하고 행복하게 미남님이랑 사랑을 속삭이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쌍십절雙十節날 선물을 드립니다.^*^
낭군님을 위해 멋진 식탁을 때마다 장만하고, 낭군님의 소소한 변덕에도 비위 잘 맞추며
깨소금 맛을 낼 줄 아는 넉넉하고 지혜로운 아내이신 블친님의 일상이 행복하고 아름답습니다.
자연의 품 속에서 그 자연만큼 곱고 따스하게 살아가시는 내 블로그 친구 님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노을진 바닷가를 산책하는 모습을 내 사진 속에 담아봅니다.
두 분의 살아가시는 이야기를 전해 읽으며, 늘 행복에 젖는 'eunbee'가
매주 토요일의 따스하고 낭만스런 두 분 술나들이를 부러워하며
언젠가는 함께 할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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