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그로브숲

친절한 순덕씨

eunbee~ 2011. 8. 1. 22:56

아침부터 은행 볼일을 보고

기왕에 내려온 김에(고층 아파트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일이 나에겐 까마득한 큰 일이다.

엘리베이터는 왜 그리도 오래오래 기다려야만 하는지....복도와 엘리베이터 안은 찜통이라 더워 죽겠는데 ㅠ)

KT에 가서 전화번호 앞자리나 바꿔볼 참이었다.

옛날 옛날 한옛날 016으로 시작되는 휴대폰 전화번호를 받은 이후

단 한번도 바꾸어본 일이 없는 이 번호를 파리로 갈 때 일시정지를 하고 갔다 왔더니

재개통해준 전화국 아저씨 하는 말씀이 010으로 바꾸라는 안내문이 갈거라나 뭐라나...

안내문 오기전에 내가 가서 그냥 직접 바꾸고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KT에 들어섰다.

 

 

와우~

은행에도 KT에도 얼어죽기 직전만큼 빵빵한 에어컨~

팔이 시려서 기다리는 동안 요리조리 돌아앉으며 부분 체온조절을 해야만 했다.ㅋ

'어머님~ 무슨 일로 오셨어요?"

오마나 날보고 어머님이래. 상냥한 아가씨(아줌만가?)앞으로 갔다.

표찰에는 그녀의 이름이 근사하게 새겨져 그녀 옆에 떡하니 놓여져 있고...  O순덕 ^*^

와우~ 이곳은 대한민국이다. 앗싸!

모든 것이 빵빵해. 미끈해. 반짝여. 휘황해.

우선은 기분이 좋다만...왠지 좀 찜찜한 뒤끝. 너무 잘 살어~ 너무 흔하게 낭비해~

 

 

"전화 번호를 010으로 바꾸라면서요? 안내문이 온다기에 한가한 제가 직접 왔지요~호호."

"그러셨군요. 그런데...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그래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그러니 단말기를 이것으로 새로 하시고

010 변환 기한은 통신사에서 2년 연기했으니 그때 바꾸시고....."

어리둥절... 맹~한 나는 참으로!! 매우!! 너무도!!! 쌈빡하니 상냥한 그녀의 말에 정신이 몽롱해져서

시키는 대로 그녀가 내민 종이떼기에 빈칸을 채우고, 맨꽁지에 근사하게 사인을 휘날리고.... 새 단말기를 들고 집으로 왔다.

 

시엄마가 집에 있다고 점심시간에 잠시라도 시간이 나면 집으로 휑~하니 달려오는 며느님이

열심히 메뉴얼을 읽어대며 낑낑대고 있는 나에게 "엄마 뭘 그렇게 열심히 읽어?"

"엥? 새전화기 사용법을 익혀야잖아~" "새전화기? 다~ 똑 같아. 익히긴 뭘 익혀요. 비슷비슷하니 엄만 그냥 쓰면 돼요~"

"이건 한번에 끝날 것을 두세 번의 순서를 거쳐야 된단다. 이 단말기좀 봐봐~ 왜 이래?"

"엄마~ 이건 엄마가 쓰던 것보다 한단계 아래 수준이야. 왜 이걸로 바꿨어요?"

KT직원 아가씨가 얼마나 친절하고 상냥하던지 그것에 홀딱 빠져버려서 그만 이런 사단이....에구구~

 

 

며느님이 함께 가잔다. KT로...그 상냥한 아가씨에게 가잔다. 어머머 어쩐대.

우리엄마는 아이폰을 써야하는데 왜 이런 걸 권했냐고...아무데서나 블로그 열어보고, 아무때나 공짜로 멀리있는 딸들과

문자 날려야 하는데, 단말기 기종도 엄마가 쓰던 것보다 한단계 낮은 걸로 권했냐고...한참이나 즈네들끼리 조곤조곤 이야기 하더니

'심사숙고해서 아이폰으로 바꿀테니, 오늘은 그냥 원상복귀해 달라'고 정중하게 말하더군. !!! 우리 며느님 참으로 똑똑해.

그 대화내용 중 귀에 남는 소리, '이건 실버 폰이에요~우리 엄만 이런 거 안써요.' 우화하하핫! 내며느님 화이팅!! 앗싸라비아~다.

그런데!! 나는 왜 이리 바보일까? ㅠㅠ

 

원상복구 작업중. 내 컬러링이랑 착신음이 몽땅 사라져 버렸다.

'사랑이란 그말은 못해도 먼곳에서 이렇게 바라만 봐도~~~~~' 내 전화기에서 들려올 이승철도 사라졌고

When I dream~~~, 다른사람 귀에 내가 속삭이던 '내가 꿈 꿀 때엔 당신을 꿈 꿔요. 어쩌면 먼훗날엔 당신이 현실이 되어

내게 올지도 몰라요'라고 종알대는 음악도 사라져 버렸다. 에구구구~~이런 일이.

친절한 순덕씨는 여기에 저기에 오만 데로 전화를 걸고 난리를 부리더니

집에 가서 계시란다.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얌전히 집에 와서 전화기만 쳐다보고 앉아있는데, 오모나~ 이승철 목소리가 들리네?

며느님에게 내번호로 전화좀 때려보라했더니, 오모나~ 며느님 전화기에서 Carol Kidd의 꿈같은 노랫소리가~~호홍.

됐다. 원상복구!!

 

 

적당히 무덥던날,

넘넘 친절한 순덕씨에 홀라당 반해서, 정신줄 놓아버린 것을, 센스있는 며느님이 쌈빡하니 해결했다.

'내가 꿈을 꿀 땐 친절한 순덕씨도 꿈 속에 가끔 넣어주겠어요~' 하하핫.

친절한 순덕씨~ 오늘 참으로 수고 많았어요. 어리버리 할마씨 땜시롱~

눈 뱅뱅 돌아가는 한국에서 은비메메 이렇게 살기 시작했어욤~

응원해 주세요. *^__^*

 

 

           ** 사진 : 7월 중순 여름꽃이 피고 열매가 익어가는 Sceaux공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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