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파리에서

Place Vendome 12번지, 쇼팽의 마지막 집.

eunbee~ 2010. 12. 11. 18:08

파리에서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운좋게도 30년만의 폭설이 내리고 있는 시각에-네 시간동안에 내린 눈은 기록적이었다고 합니다.-

 나는 눈속에서 방돔광장 어딘가에 있을 쇼팽이 살던 아파트를 찾아 나섰으며

쇼팽과 함께 뛸르리를 거닐 수 있는 멋진 산책을 했습니다.

 

 

쇼팽은 조르주 상드와 헤어지고 급속히 창작력을 잃죠. 결핵도 악화되구요.

그는 죽기 2주 전쯤 이곳 방돔 광장의 아파트로 마지막 이사를 옵니다.

그리고 끝내 1849년 10월 17일 새벽 2시경에 여기서 눈을 감죠.

마주르카와 녹턴의 일부가 이곳 방돔 광장에서 죽기 전까지 손본 그의 마지막 곡들이었습니다.

 

쇼팽이 살았었다는 방돔광장의 아파트 번지까지 정확히 알려주신 주헌 님의 안내로

그가 살았다는 12번지를 쉽게 찾을 수 있었지요.

 

내가 쇼팽을 만나러 갔던 길을 함께 걸어 볼까요?

파리의 함박눈은 귀한 것이라고 하니, 눈을 즐기며 함께 걸어요.

 

 

눈속에서 희뿌옇게 방돔 광장의 상징인 원기둥 탑이 보입니다.

나폴레옹 1세가 1805년의 오스테를리츠 전승을 기념하여 세운 탑으로 높이가 44m.

꼭대기에 서있는 나폴레옹의 얼굴은 너무 높아서 보이지도 않아요.

 

 

12번지로 가기 전에, 광장의 건물을 사진기에 담아 봅니다. 한 컷에 들어 올 수 없으니

나누어서....

 

 

방돔 광장은 파리시내에서도 상류사회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럭셔리풍의 장소랍니다.

고급 보석,시계, 장신구점, 유명 브랜드점, 최고급 호텔....

광장에 들어서기만해도 고급스런 인상이 확~번져 오지요. 기분좋은 곳이에요.^&^

 

 

이곳을 지날 때마다, 파리 속의 보석에 안겨있구나 하는 느낌에 젖는답니다.

내가 함부로 범접할 수는 없지만, 사랑하고 싶은 그러한 기분에 빠져 들어요. 그것은 동경같은 아련한 감상이에요.

 

 

광장을 원경으로 모두 담았으니, 이제 12번지로 갈까요?

 

 

1구, Place Vendome.  광장표지가 있고요.

 

 

보이죠? 노엘장식전구 뒤에 살짝 숨어있는 쇼팽의 흔적이...

 

 

크리스마스 장식물이 없을 때 오면 속시원하게 볼 수 있겠어요.

 

 

그런데, 12번지 중에 이집인지 저집인지 알 수가 없네요.

누구에게 물어 볼까...궁리를 합니다.

눈에 홈빡젖은 이몸으로 고급샾에 문 열고 들어가서 물어 보기엔 용기가 나질않고...

 

 

1층일까? 2층일까? 아니면 0층일까? 그것도 아니면 지붕밑방일까?

 

 

 

서너 명의 젊은이들이 오른쪽 입구로 들어가고 있기에 뒤쫓아 가서 불렀지요.

쇼팽이 살던 집이 어느집이냐고? 아~ 쇼팽? 이집이에요.

CHAUMET !!! 그이름도 찬란한 쇼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네요. 어머나~쇼메의 본점에 살았다고요?

 

 

들어가서 다시 확인해 볼까 망설이다가, 젖은 바지와 눈이 달라붙은 판초와 손에 든 우산을 생각하니

용기가 나지 않는 건 마찬가지입니다.ㅠㅠ

 

 

젊은이들이 들어간 곳으로 가 보니, 작은 안뜰이 있고, 깔끔한 아파트가 맑은 분위기로 있네요.

 

 

CHAUMET의 뒷쪽 출입구이지만-이곳이 정문 같아요-, 그래도 쇼팽이 이곳을 드나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록을 남겼습니다.ㅋㅋ

 

 

쇼팽이 자기집에서 내려다 보았을 수도 있는 작은 안뜰도 찍었습니다.

이 아파트들 맘에 들지요?

 

 

쇼팽이 살았다고 하는 장소의 뒷쪽이지만, 정보라는 것이, 더구나 아까 쇼메샾을 가리키며 쇼팽이 살던 집이라고

말해준 그 청년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두루두루 찍어 봅니다.^^

이 계단을 오르면 으리으리한 실내의 멋진 조각품 입상이 커다랗게 있던데

문지기가 떡하니 서서 사진 찍을 수 없다고 해서, 그냥 돌아섰네요.

 

 

쇼메 앞에서 바라본 광장 풍경.

나는 쇼팽도 이곳에서 이렇게 광장을 바라보던 일도 있었을 거야..하면서 눈오는 광장을 한참동안 보았지요.

겨우 2주 쯤을 살다가, 하늘로 가 버렸다니...

쇼팽에게 있어 방돔 광장은, 슬픔과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로 휩싸인 운명의 장소였을지도 몰라요.

 

 

쇼팽의 마지막이 담겨진 이 장소에, 지금은 세계적인 보석가게가 들어서 있다니...

 

 

광장을 벗어나며, 자꾸만 뒤돌아 봅니다. 죽음이 임박한 쇼팽이 슬프고 여린 시선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을 쇼팽의 마지막 집을.....자꾸만 뒤돌아 봅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모습을 그곳에 세워두고,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12번지 앞에 그를 세워두고...

 

나는 광장 모퉁이를 돌아 섰습니다.

 

 

세월도 무심하게 흐르고

사람들도 무심하게 흐릅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러할 겁니다.

 

 

방돔 광장 12번지 앞에 남겨두고 온 쇼팽은 이곳까지 따라 왔나봅니다.

이 회랑을 보며, 아~ 쇼팽이 이 긴 회랑을 거닐었을지도 몰라,하며 다시 그의 그림자를 느끼고 있으니까요.

 

 

회랑에 서서 길 건너 뛸르리 정원을 바라봅니다.

죽음이 임박한 쇼팽은 저 궁궐 옆뜰을 편안히 거닐고 싶었겠지...생각해 봅니다.

쇼팽 역시 뛸르리 정원을 자주  산책했었다고 합니다.

 

 

10월 중순의 쇼팽도 긴 검정코트를 입고 잔기침을 하며 마지막 산책을 위해

이 길을 건너 뛸르리로 향했을지도 몰라.

죽음이 눈앞에 와 있으니, 그럴 수 조차 없었다 할지라도, 나는

눈오는 뛸르리를 그와 함께 걷고 싶어서, 그를 내 산책길에 초대했답니다.

상드가 버린 병든 쇼팽을.....

...........

.................

...........

 

뛸르리 산책을 마치고

쇼팽과 쇼팽의 그림자가 드리워있을 방돔 광장을 눈속에 묻고

나도 돌아섰습니다.

 

***

(몇 시간 후 덧붙입니다.)

포스팅을 한 후에, 파리에 나가느라 메트로에 앉아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 보니,

쇼팽은 방돔 광장 12번지 아파트 1층으로 1849년 9월 말에 이사를 왔다고 합니다.

정보를 줘도 읽을 줄도 모르는 내가 참 한심스럽네요.ㅠㅠ

주헌 님께 죄송합니다.^&^

나는 언제쯤에나 똑똑해지려나? 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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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년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최고의 자존심 쇼메가 오늘날 세계 최고의 주얼리 하우스로 인정받게 된 것도 프랑스 역사의 가장 찬란한 시기였던 나폴레옹과 그의 왕비들인 죠세핀과 마리 루이스 등의 보나파르트 왕가와의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파리의 세느 강변에 있는 유명한 보석의 거리 방돔 광장에는 8각형의 광장 중앙에 나폴레옹의 동상이 우뚝 서 있고, 그 맞은 편에 1830년 프랑스의 왕실 전용 보석점으로 지정되었던 쇼메의 고색 창연한 건물이 보인다.
이 동상과 보석점 쇼메 사이에는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오늘날 세계보석 업계에 영향을 끼치는 대기업으로 성장한 쇼메도 1780년 에티엔느 니토 가 창업할 당시에는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작은 보석점에 불과했던 쇼메가 생토노레가에 있을 때, 어느날 밤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이 다급하게 이곳으로 뛰어들었다.

주인인 니토는 그를 가게에 숨겨주고 후대했다. 그가 바로 청년 장교시절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였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자신을 구해주었던 니토에게 왕관과 왕검, 그의 부인들인 죠세핀과 마리 루이스를 위한 결혼 예물을 만들도록 하였고, 그때부터 계속 쇼메는 프랑스 왕실과 인연을 맺고 전속 보석세공사로 활약하여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오늘날 쇼메가 세계 최고의 보석 브랜드로 각광받는 이유는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쇼메의 디자인 철학때문이라 할 것이다.
초창기 때부터 쇼메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는 창조자'로서의 목표를 잡고 항상 시대를 리드할 수 있는 새롭고 독특한 쇼메만의 제품을 추구하였으며 현재도 그 정신을 가장 우선적인 요소로 삼고있다.
또한 쇼메의 제품이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은 처음의 제작에서 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제품이 장인들의 손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보석을 만드는 일은 너무나 섬세함을 요하므로 소재의 다양함과 독특함을 살려낼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손 이상 그 일을 충족할 만한 것은 없다는 것이 쇼메의 철학이다.
한 모형의 스케치가 주어졌을 때 왁스나 점토로 모형을 만든 후 그것의 부피, 무게, 외관등을 측정할 수 있게 주조 작업을 한 다음 금,백금(화이트 골드),플래티늄 등으로 본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유럽 왕실의 왕족과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쇼메의 작품들은 이제는 전 세계 44개국 , 120여 개의 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현재도 쇼메의 주요 고객들은 모나코 왕자와 같은 유럽왕실을 비롯한 상류층과 미국의 케네디가와 같은 상류층 그리고 중동의 석유재벌과 같은 부유층이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1993년 쇼메 회장으로 취임한 피에르 아케의 적극적인 해외 마케팅을 통해 이제는 전세계 웬만한 국제적 도시에서는 
보석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검색에서 얻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