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니! "
이렇게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나는 눈물이 난다. 우리 남매들에게 엄마같은 언니.
엄마가 우리 곁에 없어서가 아니라, 늘 밖에서 가게 보시며 돈 버시는 엄마를 대신해서, 우리를 보살핀 언니는
우리에겐 엄마였다.
온 나라가 가난했던 시절에도, 우리 엄마 아버지는 우리를 잘 입혀주시고 잘 먹여 주시느라, 늘 돈을 버는 일에 바쁘셨다.
그에 따라 언니는 6남매의 맏이 라는 위치때문에 엄마같은 언니로 살았다.
내가 열서너살 쯤 되었을 때, 小邑에 살던 우리는 수영복이란걸 본 일도 없고 입어 본 적도 없었는데, 언니는 하나뿐인 여동생인 나를 위해 손수 재봉틀에 박아서 수영복을 만들어 줬다. 나는 시내에서 몇십리나 되는 강까지 나가서 언니가 만들어준 수영복을 입고, 친구들과 신나게 개헤엄을 치며 놀았다.
그 때 이미 언니는 시집을 간 후,
시집을 가고 나서도, 그렇게 동생들에게 무슨일이 있으면 항상 보살피고 챙겨 주었다.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 언니가 시집을 갔다.
나는 우리 언니가 우리곁에서 떠나는 것이 하도 서러워서 글을 썼다. '언니 잃은 밤'이라는 제목으로...
그 글이 교내 백일장에서 당선이 되어 상도 타고, 校誌에도 실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50년이 넘은 얘기건만...
언니는 나보다 13년이나 먼저 시집을 갔는데, 애기는 언니보다 내가 먼저 낳게 되었다.
우리 애들에 대한 언니의 사랑은 지극했다.
한동안 조카를 볼 수 없으면, 손에다가 동그라미 세개를 그려넣고는, 그것을 꼭 쥐고서, 조카들 이름을 불러 보았다고 했다. 따스하고 또 따스한 맘을 가진 천상 여자인 우리 언니.
조카들에게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렇다. 이웃에게도... 시댁 가족들에게도...
동생들을 생각하는 맘은, 어느때는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맘을 가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 만큼 지극하다.
추석이 가까워 오고 있다.
명절이 오는데 언니에게 안가고, 여행을 떠나려 하니, 괜시리 미안하고 그러면 안될 것 같은 맘에
자꾸만 언니 생각이 난다. 명절 때마다 동생들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언니를 서운하게 할 생각을 하니,
내 스스로가 참 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은 추석이 끼어있는 줄 모르고 예약을 한, 여행이다.
세월은 빠르다.
우리 언니가 처녀 적, 달걀노른자를 작은 종지에 으깨어, 얼굴에 바르는 것을 보며,
그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을 왜 바를까 하며 빤히 바라보던 기억,
한국전쟁 때 피난 가서, 오촌아저씨집 뒷동산에 앉아서, 털실로 내 옷을 짜며 부르던 언니의 노래소리,
비오는 봄날이면, 온동네를 다니며 꽃모종 얻어다가 우리집 꽃밭에 심어서,
봄 가을 여름없이 예쁜 꽃을 보게 해 주던 언니,
내가 첫발령을 받은 산골학교까지 동생을 보겠다고 와서는, 장작불 지펴 고슬한 밥을 지어 놓고
퇴근하는 나를 기다리던 우리 언니,
동생이 딸을 낳았다고, 기뻐서 기뻐서 천리 만리 달려 와, 몇밤을 꼬박 새우며 우는 조카를 안고 앉아
동생 몸조리 잘 하라고 고달픔도 잊던 우리 언니...
그 언니가 이제 늙었다.
세월은 참 빠르다.
성격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보니, 함께 여행을 떠나는 계획은 실행에 잘 옮겨지지 않지만
이젠 저렇게 늙고 있는 언니와 나에겐 함께 긴 여행을 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을 것 같다.
이제라도 고집부려서, 함께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 봐야겠다.
우리 언니가 그렇게도 살갑게 사랑을 쏟아 붓는 조카들을 만나러 가자고, 꼬셔 봐야지.
내 언니를 위해서가 아니고, 내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ㅋㅋ
난 이렇게 언니 앞에서는 철저히 이기주의자가 된다.
어제 인수씨랑 함께 본 영화 '카라멜'을 보고
반성 많이 했다.ㅋㅋ
착한 언니는 하늘이 내리고, 그러면... 로즈같은 착한 동생은 누가 내려 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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