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앞
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 위에서는, 세상살이가 힘든 사람들이 가끔 다이빙을 한다.
두 주 전에는 마석에 산다는 할머니가 다리 중앙에서 물로 뛰어 들었다.
뛰어 들고 보니 물이 무서웠는지 죽기가 무서웠는지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정원에 앉아서 수다 떨던 여인네들이 그 소리를 듣고 신고 전화를 하고
우리 건물 일층 아저씨는 커다란 스티로폼을 띄워서 그 할머니를 구해 냈다.
거의 그렇듯이 119나 112는 게임오버'상황종료' 하고 나타나서 별 성과없이 그냥 갔댄다.
그냥 게임 정도로 받아 들여지는 건가?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도 그들에겐? 아니겠지...
그런데 왜 우리는 그들을 믿지 못할 때가 그렇지 않을 때 보다 더 많을까?
동네 사람들의 비난을 면치 못한채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 갔다.
그들에게 쏟아내는 비난은 그들 뒤에서 한다.
다리 중앙에서 물로 뛰어든 할머니는, 구해준 아저씨에게 자기 신발과 가방이 저 다리위에
있으니 가져다 달라고 했단다.
살기도 죽기도 참으로 어려운 할머니.
그는 왜 물에 뛰어 들었을까...
인생의 고뇌는, 어느 사람의 맘 속 깊은 어려움은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얘기를 나눠도, 아무리 자기 속을 얘기해도, 그저 말일 뿐,
그 속에 응어리져 가라앉은 앙금은 아무도 알아챌 수 없다.
때로는 자기 스스로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닷새 전에는 이 마을 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할아버지가 또 그 다리 위에서 뛰어 내렸다.
링거를 풀고, 병원을 나서서, 한 밤중에 물을 내려다 보다가 그냥 뛰어 내렸단다.
그 할아버지는 구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지, 구해 달랄 사람이 없었는지, 아니면
꼭 죽으려고 단단히 맘을 먹었는지, 아무튼 그냥 그대로 물 속으로 숨으셨다.
꼽았던 링거를 없애고 강물을 향해 걸어 와야 했을 때의 그 할아버지 맘은 어땠을까..
그 속 깊은 고뇌와 어려운 세상살이와 죽음을 택해야 하는 절박함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
우리는 서로서로가 서로서로를 알 수 없다.
백년을 함께 살아도, 천년을 함께 한다해도, 그 속속들이 쌓여가는 혼자만의 느낌과 생각과
각자의 정서를 어떻게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제 맘 저도 모르는 건데....
서로를 안다고 착각하지 말자.
제 생각과 다르다고 탓하지 말자.
그 사람이 된다해도 그 사람을 속속들이 모르는 거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한 개의 섬으로 살아 간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손 닿을 수 없는 외로운 섬으로.
북한강 끄트머리에 떠 있는 심심찮은 섬에서는, 가끔 아무도 모르는 영혼이 아무도 모르게
강물로 잠수하려는 시도를 하고, 더러는 생각대로 더러는 빗나가게 결론을 짓지만
그 사연은 아무도 모른다.
말을 해도 모른다.
말은 그저 말일 뿐, 어느 상황도, 어느 사연도, 어떤 이야기도 정확하게 전해 주지 못한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고독한 영혼들이, 그냥 섞여서 착각하며 살다 보면 더러는 물도 만난다.
그것이 인생이다.
영화 [영원과 하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