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 / 허필연 오늘 그 순하디 순한 순자를 만났다 순자는 내 초등학교 친구 선생님께 야단맞고 교실에서 쫓겨나던 날 산모롱이에서 동무해 준 순자 상고 나와 신설동 밍크담요 대리점에 취직한 순자 억지거리 대학생이 된 나를 부러워하면서도 눈치보며 자장면 한 그릇 더 시켜주고 사장님 몰래 전화하라고 망 봐 주던 순자 그런 순자를 화가에게 뺏겼다 십년하고도 팔년이란 세월을 란 치는 남편 먹 갈아 준다고 평일을 몽땅 바치고 나머지 하루는 하느님께 찬송드려야 한다고 날 볼 수 없다던 순자 순자는 나를 잊었나? 오손도손 오리를 걸어 순자는 냇길로 십리, 나는 산길로 십리 아쉬움이 머물던 그 자리 새말 갈림길 내려다보면 순자는 아득한 점으로 사라지고 그 아득함이 이제 순자와 나의 거리가 되어버린 듯 그런 순자가 오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