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aux에서

2022. 08. 15

eunbee~ 2022. 8. 15. 21:51




순자 / 허필연


오늘 그 순하디 순한 순자를 만났다

순자는 내 초등학교 친구
선생님께 야단맞고 교실에서 쫓겨나던 날
산모롱이에서 동무해 준 순자

상고 나와 신설동 밍크담요 대리점에 취직한 순자
억지거리 대학생이 된 나를 부러워하면서도
눈치보며 자장면 한 그릇 더 시켜주고
사장님 몰래 전화하라고 망 봐 주던 순자

그런 순자를 화가에게 뺏겼다
십년하고도 팔년이란 세월을
란 치는 남편 먹 갈아 준다고 평일을 몽땅 바치고
나머지 하루는 하느님께 찬송드려야 한다고
날 볼 수 없다던 순자

순자는 나를 잊었나? 오손도손 오리를 걸어
순자는 냇길로 십리, 나는 산길로 십리
아쉬움이 머물던 그 자리 새말 갈림길
내려다보면 순자는 아득한 점으로 사라지고
그 아득함이 이제 순자와 나의 거리가 되어버린 듯
그런 순자가 오늘 춘천에 왔다

결혼한 지 십 년 만에 업동이로 얻은 순자의 딸은
단지 울 줄 밖에 모르는 여덟 살배기 반뇌아
그런 수빈이를 꽃보다 예쁘다며
자랑하는 순자는 변함없는 내 친구
상고머리 깜장고무신 여전히 오종종한 순자

그래, 허전한 옆자리 아슴한 기억의 자리에
순자를 앉히자 그리고 돌아가자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주음치리와 야인시대로


🧚‍♀️🧚‍♀️🧚‍♀️




내친구 이름도 순자
가난한 시골 태생

부지런하고 영리한 모범생, 순자
중학굣적 어린 시절
班 책상 짝꿍
도시락 나눠 먹던 내 짝꿍

세월
무장무장 흘러
나중엔 내무부차관 부인
그리고 더 나중엔
약간의 치매끼가 있다는 소식

그 후
소식 궁금한
우리 班 모두의
순자




은비가 만든 작은 도자기
빛내 보려고 묵은 가지 잘라
담아 두었다

심심하고
조용한 것끼리
오손도손 제 하루들 얘기하겠지

떠나면서도 아름다울 줄 아는
나무들
잎들
그리고... 또...
뒷모습이 맑고 향기로운
어떤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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