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적 놀던 곳.
오늘도 그 곳은
아름답고 정겹습니다.
꽃피는 사월.
어릴적 뛰놀던 고향을 찾아
늙은 오늘을 뉘어 보려
반 백년 전 그날들을 서성입니다.
미풍에도 흩날리는 꽃잎이
다시는 돌아 오지 않을 시간들을
하나씩 둘씩 뿌려줍니다.
여린 꽃잎으로
어제들을 일깨우는 사월의 선물이
눈물 어리게 고맙습니다.
'쌍둥밤'이라 불리우던 단짝 친구랑
언 호수위를 스케이팅 하던 이곳에
오늘은 이렇게 맑은 봄이 내려 앉았습니다.
친구 오빠의 손을 잡고
친구랑 나는 오빠의 양손에 이끌려
얼음위를 미끄러져 가는 황홀한 기분에 얼마나 즐거웠던지...
그건
그 시절은
너무너무 머언 전생같은 얘기입니다.
반세기 전이란, 얼마나 머언 기억인지요.
단짝 친구랑 나는
정말로 많이도 떠나와 버렸습니다.
뒤돌아 보기도 한참이나 어려운 까마득한...그 때.
호수가 잘 보이는 창가 테이블에 자리하고
플라스틱 컵에 담겨온 인스턴트 커피를 마셨습니다.
도무지 깨어날 수 없는 꿈속 길을 걷는 듯
수양버들 하늘거리는 호숫가의 꼬부라진 길을
아지랭이 같은 눈길로 더듬었습니다.
우리 서로 수줍던 첫사랑이
이 나무 뒤켠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혼자서 괜시리 가슴 두근거리며
얼굴 붉혀 봅니다.
어이없는 망상이
그래도
부끄럽지만은 않답니다.
내게도
추억속에 새겨진 어설픈 첫사랑이 있지요.
못 본지 십 수년 만에 만났었고
만난 후 또다시 못본 채
스무 번째의 봄을 떠나 보내고 있지만
내겐 참으로 아름다운 옛사랑입니다.
멀리 있어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다시 만나는 걸 두려워하는 마음을
아는 사람은 아시겠지요.
첫사랑은, 이렇게
멀리 두는 것이랍니다.
봄날
수양버들 길게 드리운 호수 속에
백일몽에 잠긴 하루를 묻어두고 갑니다.
고운님 함께 걷던 길 저쪽으로
행여나 그님도 나와 같아
홀연히 달려 오지는 않으려는지.
**큰길 건너 언덕 위
은비 오두막에 올라 서면
이 호수가 보인답니다.
호암지라는 이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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