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수양버들 춤추는...

eunbee~ 2008. 4. 11. 18:55

나 어릴적 놀던 곳.

오늘도 그 곳은

아름답고 정겹습니다.

 

 

꽃피는 사월.

어릴적 뛰놀던 고향을 찾아

늙은 오늘을 뉘어 보려

반 백년 전 그날들을 서성입니다.

 

미풍에도 흩날리는 꽃잎이

다시는 돌아 오지 않을 시간들을

하나씩 둘씩 뿌려줍니다.

 

여린 꽃잎으로

어제들을 일깨우는 사월의 선물이

눈물 어리게 고맙습니다.

 

 

'쌍둥밤'이라 불리우던 단짝 친구랑

언 호수위를 스케이팅 하던 이곳에

오늘은 이렇게 맑은 봄이 내려 앉았습니다.

 

친구 오빠의 손을 잡고

친구랑 나는 오빠의 양손에 이끌려

얼음위를 미끄러져 가는 황홀한 기분에 얼마나 즐거웠던지...

 

그건

그 시절은

너무너무 머언 전생같은 얘기입니다.

반세기 전이란, 얼마나 머언 기억인지요.

단짝 친구랑 나는

정말로  많이도 떠나와 버렸습니다.

뒤돌아 보기도 한참이나 어려운 까마득한...그 때.

 

 

호수가 잘 보이는 창가 테이블에 자리하고

플라스틱 컵에 담겨온 인스턴트 커피를 마셨습니다.

도무지 깨어날 수 없는 꿈속 길을 걷는 듯

수양버들 하늘거리는 호숫가의 꼬부라진 길을

아지랭이 같은 눈길로 더듬었습니다.

 

  

우리 서로 수줍던 첫사랑이

이 나무 뒤켠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혼자서 괜시리 가슴 두근거리며

얼굴 붉혀 봅니다.

 

어이없는 망상이

그래도

부끄럽지만은 않답니다.

 

내게도

추억속에 새겨진 어설픈 첫사랑이 있지요.

못 본지 십 수년 만에 만났었고

만난 후 또다시 못본 채 

스무 번째의 봄을 떠나 보내고 있지만

내겐 참으로 아름다운 옛사랑입니다.

 

멀리 있어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다시 만나는 걸 두려워하는 마음을

아는 사람은 아시겠지요.

 

첫사랑은,  이렇게

멀리 두는 것이랍니다.

 

 

봄날

수양버들 길게 드리운 호수 속에

백일몽에 잠긴 하루를 묻어두고 갑니다.

 

고운님 함께 걷던 길 저쪽으로

행여나 그님도  나와 같아

홀연히 달려 오지는 않으려는지.

 

 

**큰길 건너 언덕 위

   은비 오두막에 올라 서면

   이 호수가 보인답니다.

   호암지라는 이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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