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책읽고 여행하기, 여행하고 책읽기

eunbee~ 2008. 4. 15. 18:36

이십 사오년 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서유럽 여행길에 올라

스무날 남짓한 기간들을 이나라 저나라, 이 문명 저 유적을 보고 돌아와서,

나는 서양사, 서양문화사를 읽느라 한참 동안 바빴었다.

여행에서 만난 길동무에게서 배운 매우 바람직한 독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르쳐 주신  정선생님은, 오래전에는 사범학교 교단에서 계시다가,

우리가 여행지에서 만났을 때는 대구의 한 사립고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이셨는데,

이미 많은 해외 여행을 하신 분이셨기에, 해외가 초행인 우리들에게

많은 도움의 말씀을 주셨다.

그분은 여행에서 돌아 오시면, 그 여행지에서 본 곳에 대한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다가

매일 밤 읽으면서, 다시 한번 그 여행을 반추하고, 정리하고, 더 넓고 깊게 알아 본다고 하셨다.

 

나는 태생적으로 기행문을 좋아하는 기질이다.

중고등학교 때,

김찬삼 교수님의 책을 읽으며/책을 쓸 무렵엔 제물포 고등학교 교사였었지?/ 세상을 몇 바퀴 돌았고,

많은 사람들의 기행문과  천경자의 여행그림에 빠져서, 환상 속을 헤매며 살았다.

양희은씨가 기타를 들고, 유럽의 어느 거리에 앉아, 기타를 퉁기며 노래 부르는

TV 화면속의 그림을 보고, 얼마나 울었던지....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녀가 너무너무 부러워서...

그때가 아마도 1980년도 쯤 일 거다.

엥? 얘기가 삼천포로 빠지고 있네. ㅋㅋ

 

아무튼 정갑병선생님/작가 정을병님의 형님/께서 여행을 마치고 난 후에

다녀온 여행지에 대한 책을 읽는다는 얘기를 듣고 부터는

나도 여행 전이나 후에, 여행지에 대한 '공부'를 그럭저럭 열심히 하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너무너무 좋아져서, 인터넷을 뒤지면 흡족할 정도는 아니라도

그런대로 궁금하거나 알고 싶은 것은 해결이 되는 세상이다.

그것이 나를 더러는 게으름으로 몰고 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워낙 아날로그 선호자?라서

단행본 활자로 찍혀나온 '책'이라는, 實在하는 부피의 매력을 버릴 수가 없다.

 

넓다란 공간이 책으로 꽉 채워진 대형 도서관에 들어서면

아- 가슴 벅차게 솟아 오르는 행복감!!

읽지 않고도 벌써 도취되는 책으로의 여행길!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맘에 드는 책 두서너 권 골라 계산대에 올려 놓을 때의 짜릿함!

그 책을 들고 집으로 향할 때의 조바심!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가!

 

그런 기분으로 사다 놓은 '신의 지문'을 무려? 석달에 걸쳐서 읽어 냈다.

'읽어 냈다' 라는 표현이 옳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기분이.....

나는 게으름을 포장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몽상과 환상과 게으름은 짝꿍들이다.

꼼짝달싹도 하지 않고 앉아서, 모든 곳, 모든 것, 모든 감정, 모든 인간들을

탐닉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게다가 경제적이기 까지 하다.  투자된 것에 비해 얼마나 많은 수확인가.

일주일에 3-400페이지 짜리 서너권은 기본으로 읽는 내 독서 속도나 독서량을 바탕으로 한다면

이 책도 일주일에 다 읽었어야 하는, 각각 400페이지 쯤의 두 권으로 된 책이다.

'신의 지문-사라진 문명을 찾아서' 그레이엄 핸콕

 

라틴 아메리카 여행에서 돌아와, 그 느낌이 퇴색되기 전에 서툰 기행문이라도 옮겨 보려고

블러그에 올려 놓고는, 내 나름의 기행문을 다 쓴 후에  천천히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을 읽어 갈 수록, 내가 쓴 기행문에 대한 부끄러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진정한 느낌이었고, 한계이고,

이 책을 읽기 전의 내 상식과, 여행지에서 듣고 알게된 전부임을 어쩌랴.

이 책을 읽는 사이사이에도 나는 외도?를 많이 했다.

읽었던 이동진 책을 다시 한번 읽고,

읽었던 김남희 책을 좇아, 또한번의 책 속 여행을 했으며,

/이제는 같은 책을 열번 읽어도, 뒷 페이지 읽을 때 벌써 앞 페이지 내용이 까맣다.ㅠㅠ

난 이렇게 산다. ㅠㅠ 히히/

요즘 관절이 좋지 않은 나의 현재를 달래 보려, 세권 중  마지막 권의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노신사를 따라 실크로드

마져 걸었다.

 

그러면서

그럭저럭 석달이라는 시간을 씨름하며, 

잉카와 아즈텍과 마야와..기타 등등 그리고 이집트를

방황하며 다 읽었다.

오늘. 꽃피는 사월 중순 막바지 날에...캬~~

황도와 세차운동과

1만 450년 전에 계획된 오리온별자리와 피라미드의 위치와 씨름하면서...

아둔한 나도 수수께끼의 문명흔적 언저리에서

'토트의 책'의 작은  낌새라도 찾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토트-이집트의 지혜의 신

[ 토트는 하늘의 수수께끼를 이해하는 데에 성공했는데, 이 수수께끼의 비밀을 몇 권의 성스러운 책에

기록해서 밝혔다. 토트는 이 책들을 지상에 숨겼다. 이 책들이 장래에 나타날 세대에 의해서 연구될

수 있도록 그러나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자들에 의해서만 발견될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신의 지문. 下권 P.657 ]      

저자는 이 책이 실재하기 보다는 토트의 은유적인 책이라고 언급했다. 아무튼

 

라틴 아메리카와 이집트로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기전에 이 책을 읽고 갈 것을 권해 본다.

나는 읽는 동안, 지리, 지구과학, 천체,인류문화사에 대한 책을 더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문명의 흥망 성쇄의 과정과 비밀에 대해서는 비교적 쉽게 쓰여졌지만,

'황도' '세차 운동' '최소의 황도 경사' '분점세차' '근일점' '별자리와 지상위에서의 수학적

연계지점' 등등... 이런 설명에 부딪힐 때엔,

과학고등학교 졸업생인 조카에게  설명을 부탁할까,

과학고등학교 교감 출신인 동생에게 지구과학 개인지도를 받아 볼까...

참 많이 답답하고

아둔한 내 머리로는 이해의 한계 정점에서 우울해 지기도 했다.

 

두 해 전에 내가 두꺼운 책을 들고 앉아서

그 책의 무게/물리적/에 눌리고, 그 책의 방만한 스케일에 눌려 낑낑대다가  다 읽은 후에

'아휴-- 다 읽었네.' 라고 말했더니

그 때 한국에 왔던 큰따님이

'그래, 그 책에 뭐가 써 있던감?' 하더군요.

'문명이 사라지는 건, 모두 인간들 때문이야. 인간의 호기심과 지혜가 문명을 만들고

시간은 문명을 쌓이게 하고, 인간의 욕심은 문명의 몰락을 초래하는거야.

있는 그대로 자연과 순응하면서, 욕심없이 살아야 해.'

'겨우 그 빤한 진리를 알아 내려구, 800페이지에 가까운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어?'

내 큰따님의 말에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는 생각 나지 않는다.ㅋㅋ

'그러게 말야' 하면서 웃었던 것같다.

책의 두께와 감동이나 여운은 비례하지만은 않는다.

문명의 붕괴/COLLAPSE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이었다.

다시 한번 읽는다면, 또 다른 감상문을 쓰게될 것같다.

책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늘 그렇지 않던가 !

 

그러나 '신의 지문' 을 읽으면서, 나는 보다 생생하게 글을 느끼며 읽었다.

내가 바로 몇주 전에 그곳 그 장소, 그 문명속을 다녀 왔기 때문에....

이처럼, 여행을 가기 전에 그 여행지에 대한 책을 읽고 떠나고, 다녀 와서

다시 한번 내가 보고 느낀것을 되새기며  책을 읽어 보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이미 다들 그렇게 하고 있을테지만....^&^

 

잔소리쟁이 선생기질 발동에서라고나 할깡?

아니야 아니야, 책을 읽는다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이라구!!!

그*래*서, 모두모두 행복을 맛보시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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