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그로브숲

아들아,

eunbee~ 2008. 2. 19. 13:18

아들아,

네 생일이란다.

네가 멀리 떠나버린 이 집에서, 너의 서른다섯 번 째의 생일을 맞았구나.

너 같이 '아주 괜찮은 사람'이 나의 아들로 내게 와 주어서 고맙다.

태어나서 이제까지 단 한번도 부모 속을 썩이지않은 너에게 무어라고 고마움을 말해야 할지...

더구나 그렇게 세계로 나아가, 꿈을 영글게 하며, 진정으로 살고 싶은 삶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의 내 아들도 참으로 자랑스럽다.

꿈이 무르익어 날개를 펴고 다시 이 둥지로 날아 오는 날까지

우리 모두 스스로의 삶을 행복으로 채우며, '지금 여기'에 충실하며 살자.

 

아들의 생일날

아들이 좋아하는 강마을 우리집을 사진에 담아

이곳을 그리워 할 아들에게 보낸다.

 

 

 어느새 해가 길어졌나보다.

아침 7시 40분 쯤이 되면, 뒷집 아파트의 그림자가 강물에 드리운다.

강가에 서있는 소나무는 붉은 색으로 생기를 띄고 있다.

교각 부근의 얼음은 낮에는 녹고, 밤이면 다시 살짝 얼어 아침에는 은빛이 되는구나.

언 강물은 언제 쯤에나 녹으려는지.

 

 

 

황혼이 내리기 시작하면

나는 커튼을 드리운다.

어스름 저편으로 가로등이 하나 둘 밝혀지면

너무 쓸쓸해지니까...

 

그리고는

잠시 어둠이 사위를 휩싸 안을 때까지,

아들은 지금쯤 무얼 할까 하는 생각에 잠긴단다.

 

 

 

이 긴 마루를 오갈 때마다

나는 아들이 그립다.

왜 이 긴 마루를 걸을 때면 유독 더 그리운걸까...

저쪽 방에서 당구를 치던 네 모습이 그립고

저 쪽 샤워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네 모습이 그립고,

그리고 길고 길게 생긴 이집을 좋아 하던 네가 그립다.

 

 

 

 

현관문 앞에는 너를 기다리는 실내화가 늘 그렇게 놓여 있단다.

 

 

엄마는 따스한 난로 앞에 앉아,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고....

나란히 놓여 있는 실내화를 신어 줄 아들과 며느리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네가 사용하던 저 샤워실에서 금방이라도 머리 털며 나올 것같은....

엄마는 이곳으로 와서는 단 한장의 그림을 그렸을 뿐...ㅋㅋ

이 방이 지금은 너무 춥거든.

 

 

 

 아들,

이 잠자리가 그립지 않니?

 

 

 

저기 보이지?

네가 여남은 살 적에

엄마 생신을 축하 한다며

용돈을 모아서 장만해온 선물

'춤추는 연인들'이라는 도자기로 된 오르골.

 

오늘도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듯이

오르골의 태엽을 감아 두고

눈을 살며시 감는다.

내 아들의 어린날부터 지금까지를 떠 올리며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느리게 돌아가는 오르골 소리를 듣는다.

 

참으로 살아 볼 만한 세상.

무얼 하며 살든, 어디서 살든

즐겁고 행복하게 살자.

 

아들아,

서른다섯 해 전에는 외할머니가 우리 옆에 있었지.

너를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본 사람으로...

우리 오늘은 그 분도 추억하자. 

그리고 또 한사람, 네 아빠도 추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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