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대 밭 에 서
박 재 삼
갈대밭에 오면
늘 인생의 변두리에 섰다는
느낌밖에는 없어라.
하늘 복판은 여전히
구름이 흐르고 새가 날지만
쓸쓸한 것은 밀리어
이 근처에만 치우쳐 있구나.
사랑이여
나는 왜 그 간단한 고백 하나
제대로 못하고
그대가 없는 지금에사
울먹이면서, 아, 흐느끼면서,
누구도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소리로
몸채 징소리 같은 것을 뱉나니
지금은 소식이 끊긴
사람.
어느 가을날, 내 책상위에 두고간
연필로 베껴 쓴 시 한편.
'갈대밭에서'
나는 오래도록 그 시가 적힌 종이를
내 책상 유리판 밑에 곱게 펴 놓고
몇해를 몇해인가를 두고두고 읽었다.
이사를 하다가 그 종이를 잃어버렸다.
오현이에게 미안했다.
이 가을날
난 그를 생각하고
그를 그리워하고
순수와 열정에 찬 그를 못잊어한다.
권오현,
지금 어딨니?
나는 이렇게 십수년 전의 종이 쪽지에 적힌 시와 그댈 기억하고 있건만...
권오현 이후
난 그렇게 멋진 여선생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이렇게
바람결에 몸 뒤채며
쓸쓸한 노랠 부르는 갈대숲에 서면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건내주던 사람이
몹시도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