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적, 내 고향에서 보던 금잔디가 탄천변에 지천이다.
고향 / 신동엽
하늘에
흰구름을 보고서
이 세상에 나온 것들의
고향을 생각했다.
즐겁고저
입술을 나누고
아름다웁고저
화장칠해 보이고,
우리,
돌아가야 할 고향은
딴 데 있었기 때문...
그렇지 않고서
이 세상이 이렇게
수선스럴
까닭이 없다
묵언默言 / 유용주
누가 오셨나 마루에 비 오시는 소리 듣는다
개울물 소리 읽는다
나무에 스치는 바람 소리 건너간다
짐승 우는 소리에 귀쫑긋 늘어진다
벌레들이 어디로 꼬이는지 살펴본다
풀을 깎고 뽑는다
나무를 껴안고 빙빙 돈다
밤에 몇 번이고 마당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릴 때처럼 별들이 흐르고 달이 이울고 뭉게구름이 떠 있고
수제비와 팥죽은 없다
아침이면 새소리에 잠을 깬다
가끔 텃밭을 고른다
감나무 잎이 소리 없이 진다
이빨 물고 깨어있는 서리꽃을 밟아본다
눈물겹게 눈 내리시는 모습을 바라본다
꽁꽁 언 얼음장을 들여다본다
찬물 먹고 숨을 쉰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밥솥이 혼자 말한다
밥이 다 되었으니 잘 저어주라고
***
한 해가 또 이렇게 저무니,
달아나는 세월을 그저 바라만 본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 밥솥이' 내게 말을 걸어 준 한 해였으니
그도 반갑고 고마운 일.ㅎㅎㅎ
내년에도 묵언의 세월이 이어지겠지만, 그래도 그 게 어디야.
겅중대고, 나풀대고, 어슬렁거리고, 휘적휘적 다니고...
그 놀이도 얼마나 즐겁던가.
탄천엔 내 좋아하는 많은 것들이 늘 있으니 복받은 겨.
수다 늘어놓고 싶을 때 이렇게 토다닥 토다닥 자판 두드릴 공간이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인지.
2019년! 너무너무!! 고마웠어요.
2020년! 기쁘게!!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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