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歲暮에 다시 읽어 본 시

eunbee~ 2019. 12. 29. 22:06

 나 어릴 적, 내 고향에서 보던 금잔디가 탄천변에 지천이다.




고향 / 신동엽

 

하늘에

흰구름을 보고서

이 세상에 나온 것들의

고향을 생각했다.

 

즐겁고저

입술을 나누고

아름다웁고저

화장칠해 보이고,

 

우리,

돌아가야 할 고향은

딴 데 있었기 때문...

 

그렇지 않고서

이 세상이 이렇게

수선스럴

까닭이 없다







 




묵언默言 / 유용주


누가 오셨나 마루에 비 오시는 소리 듣는다

개울물 소리 읽는다

나무에 스치는 바람 소리 건너간다

짐승 우는 소리에 귀쫑긋 늘어진다

벌레들이 어디로 꼬이는지 살펴본다

풀을 깎고 뽑는다

나무를 껴안고 빙빙 돈다

밤에 몇 번이고 마당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릴 때처럼 별들이 흐르고 달이 이울고 뭉게구름이 떠 있고

수제비와 팥죽은 없다

아침이면 새소리에 잠을 깬다

가끔 텃밭을 고른다

감나무 잎이 소리 없이 진다

이빨 물고 깨어있는 서리꽃을 밟아본다

눈물겹게 눈 내리시는 모습을 바라본다

꽁꽁 언 얼음장을 들여다본다

찬물 먹고 숨을 쉰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밥솥이 혼자 말한다

밥이 다 되었으니 잘 저어주라고




***



한 해가 또 이렇게 저무니,

달아나는 세월을 그저 바라만 본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 밥솥이' 내게 말을 걸어 준 한 해였으

그도 반갑고 고마운 일.ㅎㅎㅎ

내년에도 묵언의 세월이 이어지겠지만, 그래도 그 게 어디야.


겅중대고, 나풀대고, 어슬렁거리고, 휘적휘적 다니고...

그 놀이도 얼마나 즐겁던가.

탄천엔 내 좋아하는 많은 것들이 늘 있으니 복받은 겨.

수다 늘어놓고 싶을 때 이렇게 토다닥 토다닥 자판 두드릴 공간이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인지.



2019년! 너무너무!! 고마웠어요.


2020년! 기쁘게!!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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