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세세연년 백일홍은 피고

eunbee~ 2019. 7. 16. 21:26

사진은 경비원 아저씨가 가꾸어 둔 아파트 텃밭에서.. 오늘 저녁나절에

 

 

 

백일홍이 노랗게 빨갛게 피는 여름이 되면, 언제나 내겐

어린날의 우리집 마당에서의 풍경이 함께 피어 오른다.

나 어릴 적 고향집 마당 저 편의 꽃밭에서는

봄꽃, 여름꽃, 가을꽃... 철따라 꽃이 피었고,

그중 백일홍과 채송화가 가장 많았다.

 

 

 

 

 

 

 

너른 마당에서는 우리 세 남매들이 늘 함께 놀았었지.

(정확히 말하자면 4남매지만, 막내는 아기라서 엄마 곁에 있었고)

자치기, 다마(구슬)치기, 사방치기, 평상에 엎드려 숙제하기.

내 바로 아래터울 남동생은 대못 정수리를 장도리로 두드려,

온 마당에 못을 박기도 하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왜 그리도

열심히 박는지. 그리고는 다시 모두 뽑고는 그제사 환히 웃었지.

 

언니와 오빠는 일찌기 집을 떠났고, 나부터 시작해서 정확히

네 살 씩 터울지는 내 동생 셋은 모두 머스마들.

언제나 대장은 못박기 선수인 '착실이' '참견쟁이'인 그 동생이었다.

무려 네 살 아래가 언제나 내게 오빠노릇을 하려들었다.

 

꽃밭 가장자리에서 가장 키큰나무는 무궁화, 그 아래 놓여진

평상에 누워, 은하수 길게 흐르는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 보며, 동화책 속 이야기를 하며 놀던,

동화처럼 아름답던 어린 날들.

평상 위로는 무궁화꽃이 툭툭 떨어졌고, 그리고

'루디'라는 이름의 커다란 개도 옆에 있었지.

잘 생기고 착한 루디.

루디때문에 밤이 무섭지 않던 우리들.

 

 

 

 

 

 

 

우리들의 많고 많은 여름날,

가끔 우물가에 엄마가 띄워 두는 노오란 참외,

그걸 먹기 전, 대장 동생은 우리 둘을 나란히 세워두고

금방 길어올린 두레박에서 물한입을 볼 불룩하게 물고

누나와 동생 얼굴에 분수뿜기를 해주었다.

 

아, 간지럽게 얼굴에 와닿던 그 물줄기.

까르르~ 즐겁게 웃는 게 재미있어, 대장 동생은 몇두레박의

물을 그렇게 분수뿜기를 했었지.

그것은 대장의 특권이라 여겼으니까.

 

그리고는

시원하게 해줬으니 참외는

자기가 가장 많이 먹어야 한단다.

 

 

 

 

 

 

 

 

겨울이 되면 우물가 시멘트바닥이 얼음으로 덮이고,

우리는 앉은뱅이 썰매를 탔지.

뒷곁 미류나무 아래 작은 도랑도 얼어

해저무도록 얼음지치고 썰매타기에 골몰하던 우리들.

 

그래서인지 나는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이 좀체로 없었다.

아주 가끔 대장동생 따라나가, 집 앞 신작로에서 동네애들과 하던

깡통차기놀이가 다른 아이들과 놀던 전부였다고 기억된다.

그래서 중학교 이전의 내 '놀이친구'는 남동생들이 전부였다.

 

내 어린날의 기억은 그 마당과, 그 꽃밭에 담겨있고,

어린시절의 이야기는 추억의 꽃으로

시시때때 피어난다.

 

 

 

 

 

 

 

그러던 '대장 동생'은 2주째 대만에서 홀로 여행중이고

(그는 두 달에 한 번씩,2~3주를 혼자 동남아 여행을 한다. 퇴직 후의 낙이라며)

가장 어렸던 막내동생은

부부가 손 꼭 잡고, 발트3국 자유여행 중이지.

우린 이렇게 이제는 제각각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낸다.

심심하게... 혹은 쓸쓸하게...

또는 깨소금 볶으며.

 

 

세세연년

백일홍은 피어나고

채송화는 다시 웃지만, 우리 남매들의

어릴 적 그 꽃밭 예쁜 마당 풍경은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세월이다.

 

 

 

쥐똥나무 열매

 

 

내일은

내 아드님 아버지의 기일이다.

내 아이들의 기억속에는

어떠한 풍경의 마당이

자리하고 있을까.

 

그 마당 가엔

어여쁜 꽃은 피어 있을까.

 마당을 서성이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떻게 새겨져 있을까나.

 마루끝에 앉아있을 엄마는

어떤 엄마로 그려지려나.

 

 

세세연년

나의 백일홍이 피듯

내 3남매의 마당가 꽃밭에도

어여쁜 꽃들이

 

그렇게... 피어나,

 

웃었으면 좋겠다.

그리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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