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10월 마지막 햇살 아래서

eunbee~ 2018. 10. 31. 20:40

 

 

(사진: 내집 창문 아래 있는 작은 공원 귀퉁이 모습들, 금일 오후)

 

 

 

눈부시게 어여쁜 단풍에 취했던 며칠,

눈깜짝할새 시월 마지막 날이네.

중앙 시조 백일장, 10월 수상작을 읽는다.

이 가을, 뉜들 시인이 되지 않았으랴.

 

 

 

 

포도나무 이발사의

 

ㅡ 임 성 구 ㅡ

 

시를 일처럼 쓰는 시인이 있었네

포도나무 가지 치듯 모순된 말을 쳐내

따뜻한 운율 되려고 푸르게 일을 하네

 

허공으로 올라갈 사다리를 세워놓고

한 발짝씩 오르면서 혈맥을 압축하네

바닥에 뚝뚝 떨어진 시

바람장막 치고 있네

 

낱말처럼 번져가는 가지들의 푸른 맥박

진 꽃들의 화사한 기억, 찾아갈 수 있을까

한 송이 염원의 문장

노을로 익기까지

 

 

 

(중앙일보 시조 백일장. 2018.10. 31일자에 게재된. 초대시조 작품)

 

 

 

 

 

 

 

성묘

 

ㅡ 임 주 동 ㅡ

 

요즘도 날 궂으면 삭신 쑤시나요

다 자랐을 손주들 많이 보고 싶으셨죠

내 얘기 듣기만 하고 한 말씀도 안 하신다.

 

등 굽은 소나무에 말벗을 당부하고

손짓하는 발걸음 그림자 흔들리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리움도 출렁인다.

 

감잎이 떨어지는 산길을 걸어 나와

햇살 한 짐 지고서 방안에 들어서니

당신이 먼저 오셔서 사진 속에 앉으셨다.

 

 

 

(중앙 시조 백일장 10월 수상작. 차상次上 )

 

 

 

 

 

 

 

 

 

무료급식 행렬

 

ㅡ 이 성 보 ㅡ

 

눈 뜨면 적군처럼 밀려드는 고독감을

아군으로 막아줄 혈육소식 아예 없고

허기만 게랄라 되어 수시로 출현한다

 

저격탄 쏘아대듯 썰렁한 한데 바람에

저항할 기력 잃고 되똑하니 버려져서

노후를 포획당한 채 한 끼니를 얻는다

 

검버섯 낀 얼굴마다 매복한 걱정거리

진군하는 세월 두고 퇴각만을 거듭하다

서럽게 백기 내걸고 투항하는 저 행렬

 

 

 

(중앙 시조 백일장 10월 수상작. 장원)

 

 

 

 

 

계절이 그러했던가

모두들 서글픈 심상이다.

 

지아비를 먼저 보낸 늙은 아낙이나

집에서 쫓겨나와 거리밥 먹는 늙은 남정네나

모두 서럽고 서글프지만,

 

그래도

사는 일은,

거룩하다.

 

 

 

 

 

 

시월 마지막 날의 햇살

참으로 고왔다.

 

오후

찬란하게 눈부신 은행나무의 노오란빛과

한 이파리도 남기지 않은 튤립나무의 앙상한 가지 너머의

맑고 푸르른 하늘에 취해, 볕바른 벤치에 앉아, 마냥

가을을 고마워했다.

 

올 시월 빛깔, 참 아름다웠지.

아직

한참은 더 행복할 수 있을거야.

고맙고 또 고마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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