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아침 비가 후둑인다.
오랜만의 단비가 반가워
잠시 숲 속을 거닐었다.
아, 이 냄새들...
술빚는 누룩냄새, 알싸한 더덕냄새.
지난해에도 저지난해에도 똑같던 숲내음
아무것도 변한 것 없어 정답기도...
서럽기도...
비 젖은 바람이 제법 차다.
꽃비 흩날리는 벤치로 돌아와
수북히 쌓인 낙화를 보며
잊고싶은 그리움을 그리워한다.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구나.
***
< 선운사에서 >
- 최영미 -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