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객석의 그 한 사람을 위하여, [연극배우 박정자]

eunbee~ 2016. 8. 26. 09:36

 

 

 

대배우, 진정한 연극배우 박정자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무대 위의 그녀는 예술인을 너머 위대한 장인이었다.

 

최근의 공연작품 '햄릿'에서의 오필리어의 아버지 등 1인 5역,

쟁쟁한 원로배우들로 구성된 출연진 속에서 박수와 환호를 가장 많이 받은 그녀,

청중들은 왜 그녀에게 환호하는 것일까.

이제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녀는 말한다, 연극배우라는 것은 '직업'이라 말하기엔 옳지않다고. 먹고 사는 수단으로서는 전혀 아니라고.

연극 무대에 서는 일은 돈벌이와는 먼 일이란다. 그러함에도 당신은 오로지 연극배우로만 평생을 달려 왔단다.

이 나라 최고의 배우라고 스스로 말씀하시는 그녀, 참으로 아름다웠다.

 

저지난해 '키 큰 세 여자'에서 91세의 치매노인 역을 맡았을 때는 죽을힘을 기우려 대사를 암기해야만 했는데

그렇게도 힘이 들더란다. 그리고 지난 해 그녀는 다시 '햄릿'에서 다역을 맡아 기립박수를 받은 자신을 보며

아, 할 수 있구나. 이렇게 한 해 또 한 해, 한 작품 또 한 작품... 이루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 행복하시단다.

그녀 올해 나이 일흔다섯.

 

1986년 무대에 올려진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위기의 여자' 공연 때의 에피소드.

좁은 소극장, 배우와 관객이 무릎이 닿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 배우가 무대에 서니 맨앞자리의

한 여인이 눈에 들어온다. 여인은 간편한 신발에 조그마한 토큰지갑과 하얀 손수건을 꽁꽁 손에 쥐고

앉아 있다. 한 눈에도 그녀는 위기의 여자로 보였다. 대배우는 오로지 저 한 여인을 위해 오늘 이 공연을

할 것이다, 마음 먹었다. 오로지 한 여인을 위해서 이 공연에 혼신을 다할 것이다,라고.

그 여인은 울고 또 울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염없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그래, 내 공연으로 당신의 마음 한구석이

잠시라도 위로되고 치유된다면 내 공연은 그것으로 성공이다, 했더랍니다.

 

박정자, 대배우. 오로지 연극배우 박정자로 불리우고 싶고 그러하다는 그녀는 '단 한 사람을 위해 공연할 수 있어요.' 하신다.

늘 같은 꿈을 꾸는데, 항상 대사를 못외워서 안타까워하는 꿈, 관객은 가득한데 당신은 무대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꿈,

무대위에 섰으나 객석이 텅비어 있는 꿈... 한결 같이 꾸어대는 평생의 꿈자리란다.

 

나는 연극배우 박정자 씨를 매우 큰 덩치의 여인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작은 몸집의 여인이었다. 무대에 선 그녀는 내게 늘 그렇게 크게 보였었나 보다.

대배우의 면모가 외모로도 그렇게 인식되어졌었나 보다.

 

이제 그녀는 연극배우로서 걸어 온 당신의 길이 자랑스럽고 보람되고 행복하단다.

'직업'이라고 말할 수 없을만큼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연극무대,

그녀는 그러함에도 후회는 커녕, [연극 배우 박정자]인 것이 넘치도록 만족하단다.

'연극 배우 박정자' 님께 응원의 박수를 보내드리며, 시대를 함께 할 수 있음이 내게도 행복한 일이라고 말씀드리련다.

 

연극 배우 박정자 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마음 바닥을 흐르고 있는 상념들...

무대 위의 매력과 유혹을 익히 겪고, 알고 있는 사람이 그 무대를 비껴나서 살아낸 세월의 빛깔은 어떤 것일까.

그들에게 "자기 앞의 생을 살아내느라 욕봤다"라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우리 대부분이 그러하지 않을까.

 

무더위 기승인 올여름의 끈질김도 이제 서서히 스러져 간다.

새벽 다섯 시, 산책을 갈까 잠에서 일어났다. 시원한 빗소리. 어찌나 반가운지.

지금 아침 아홉 시를 훌쩍 지난 시각, 서늘한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나무잎새들 소리가 

마치 가을노래 같구나. 

 

가을, 머지 않아 곧 당도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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