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그림자 놀이

eunbee~ 2016. 3. 10. 23:48

 

 

 

어느 푸른 저녁

 

기 형 도

 

그런 날이면 언제나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을 걷고

있는 것이다,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로 제각기 다른 얼굴들을 한

사람들은 무엇엔가 열중하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혹은 좁은 낭하를 지나

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같이

서로를 통과해가는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

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

것은 무방하지 않은가

나는 그것을 본다

 

--어느 푸른 저녁 일부--

 

은비가 사쿠라꽃과 나무가지를 벽 코너에 설치,

그림자 놀이 작품.

 

내가 이 사진을 본 첫 느낌은

슬프도록 그리운...

애련한 한숨 깃든...

그런...

 

기형도를 읽노라니

은비의 그림자 놀이가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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