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집구석', 그 단어의 따스함

eunbee~ 2016. 2. 17. 06:02

'집구석'

 

오래전 내가 초임으로 있던 학교의 교장님은 '집구석'이란 단어를

매우 정감있게 사용하시는 분이셨다. 교사시절엔 국어를 가르치셨단다.

그래서였을까. 그 교장님은 말씀에 포근한 향기를 품고 있는 분이셨다.

조종례 때 '집구석'이란 단어를 인용하여 교사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그분의 인품이 훌륭하시니 그 단어가 좋게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자주 그 '집구석'을 사용하시는데, 듣는 우리들에게 가족적인

응집력을 발휘하는 묘한 뉘앙스가 옮겨져서인가 교무실 분위기는 늘 포근하였다.

 

 

또 다른 '집구석'

 

짧은 교단 생활을 접고 사표를 내고 10여 년을 집에서 주부로 근무(ㅎㅎ)하다가,

다시 복직을 하게 된 전혀 새로운 초임지(?)에서 만난 나의 미에르자.

그 가족들은 웃는 것이 長技다. 미에르자가 마흔예닐곱의 젊은 나이로

세상 하직하고 땅에 묻히는 장소에서도 그 엄마와 여동생은 한바탕의 까르르가 있었지.

 

미에르자네 '즐거운 가족'들에게 어느 해 불운이 닥쳤다.

그녀 어머니가 契를 하다가 몽땅 망하게 되어, 집까지 날려버리는 불행스런 일.

아담하고 포근하던 집을 내어주고, 아버지는 퇴직금이라도 건지려고 사표를 내셨다.

 

단칸 셋방 가족들은 각자 바깥 활동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저녁이나 휴일날이면

모두들 구석구석 자리잡고 앉아 면벽자세로 화투패를 뗀단다. 몹시도 우울하니까 그랬을까?

밖에서 돌아오신 아버지 말씀 "망한 집구석 답구나. 모두 구석구석 앉아서 화투장 던지는

모양이 망한 집구석에 참으로 잘 어울리는군." 하시더란다. 온 가족은 모두 구석탱이로부터

돌아앉아 얼굴맞대고 그리도 까르르륵대며 박장대소를 했더란다. 망해도 즐거울줄 아는 가족.

미에르자 아버지의 '집구석'은 내 초임학교 교장님의 '집구석'과는 조금 다른 억양의 '집구석'이었을 게다.

그러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집구석'이라는 내겐 포근한 느낌으로 새겨졌던 그 말이 반가웠다.

 

그래서 내 포스팅에서도 가끔 '집구석'이란 말을 애정스럽고 다감한 뉘앙스로 사용한다.

읽는 사람은 어떻게 읽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집구석',

내가 사용하는 '집구석'도 그렇게 따스하고 친밀감 가는 단어로 들려지길 바란다.

 

 

 

 

영종도의 < 개발새발>  '개발새발'을 생각하며 찍었음이야.ㅎ

 

 

 

 

여기서 사족을 붙이고 싶어진다.ㅋ

 

미에르자 아버지께서는 단 한번도 아내를 원망하거나 책망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셔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신 후, 돈을 많이 모으셨다. 알짜배기 땅도 갖게 되시고.

전화위복인 셈이랄까. 불행의 원인을 원망치 않고 처해진 여건 속에서 희망을 이루어 내신 것이다.

공무원 월급으로 생활하시던 부모님은 공인중개사로 그 시절현재 십억 대의 부자가 되었다.

80년대 중반 이후부터의 이나라 부동산업은 그러한 부를 쌓을 수 있는 호황이었다는 걸 누구나 안다. 

그러니 이재에 밝고 현실적이고 머리 좋은 사람이 활황으로 끓어오르던 부동산 세계에서 활동하였다면

그 경제력은 엄살을 부린다해도 충분히 계산될 일이다.ㅎㅎ

'집구석'에 대한 내 인상을 피력하다가 웬 부동산 관련 의견 맛뵈기를? ㅋ

 

며칠 후면 미에르자의 기일.

잘 웃는 그댁 가족들은 모두 평온한 생활을 누리신다.

미에르자의 장례날, 주렁주렁 목걸이하시고 커다란 알 박힌 반지를 끼고 계신 어머니를

한참이나 생경스럽게 바라보던 내 마음의 시선은 남은 두 모녀의 '葬地에서의 까르르~'에 끝을 맺었다.

미에르자네 가족은 그렇게 서로서로 신뢰하고, 울어야할 상황에서도 잘 웃는 '집구석'.

그녀의 밝은 에너지와 긍정은 그러한 내력에서 기인된 것이었을테지.

 

'집구석'이란 어휘의 뉘앙스를  따스함으로 내게 새겨준

초임지 교장님이 만들어내던 교무실의 즐거움을 추억한다.

 

그리고

내 젊은 시간들의 연인, 미에르자가 그립다.

세월 지날 수록 더 그립다.

 

 

'살며 사랑하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림자 놀이  (0) 2016.03.10
韓江의 소설 <채식주의자>,읽었어요  (0) 2016.02.21
꿈을 꾸게 한다는 것  (0) 2016.02.06
겨울학기 종강  (0) 2016.02.03
2016 호주 오픈 (1R)- 정현 vs 조코비치  (0) 2016.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