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아들 다녀간 날이면

eunbee~ 2015. 1. 19. 00:25

 

 

 

며칠전 보르헤스의 '픽션들'이란 책을 사러 교보문고엘 갔다.

검색하니 재고가 없다하여, 요즘 많이 읽히는 책을 뒤적이다가 태원준의 여행서를.ㅎ

혹시나 눈을 좀 높일까했더니 역시나 내 손에는 기행문이.ㅋㅋ

 

서점 카페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데, 내 속눈썹에 매달리는 눈물방울들...에혀~

이 책은 서른아들이 예순엄마랑 300일간 미친척 세계를 누빈 이야기다.

내용이 슬픈게 아니라, 내 아들의 오랜 계획과 그의 오랜 꿈이 뱅글뱅글 이슬이 되어.

 

어제

아들이 내집에 왔다.

아들은 늘 말하지. 분당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엄마에게 들린거야.

나는 안다. 틈을 내서 엄마를 보러온 아들이란 걸.

목에 명패를 달아매고 근무하던 삼성동에서 이곳까지 점심시간을 틈내, 엄마랑 점심먹기 위해

달려오던 아들이 아니던가. 그 빡빡한 회사를 박차고 나와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아들은 더욱 바빠진 모양이다.

자기가 책임자로 있으니 그 또한 시간내기가 힘든가 보다.

 

회사를 박차고 나온 직후 아들은 제안했었다.

시엄마랑 며느리랑 아들이랑 셋이서 석달만 세상구경하자고.

며느리가 반대를 했다. 여름이 겨울이는 어쩔거냐구.

 

아들은 그렇게 세상 한귀퉁이라도 엄마랑 함께 여행하는 것을 꿈꾼다.

실천하지 못해 늘 미안해 하고, 안타까워하면서.

 

내가 읽던 저 책을 들추어보더니, 아들은 말한다. "엄마랑 스페인 여행하고 싶은데..."

늘 떠나고 싶은 사람이 붙박여있는 것도 참 서글픈 현실이다.

아들은 언젠가 말했지. "엄마, 내가 난생처음 본 무지개는 생떼밀리옹에서 였어. 난생처음 보는 무지개를

프랑스에서 보다니..."

어쩌다가 아들은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무지개를 보게 되었을까.

 

책을 덮으며 아들이 또 묻는다. 그가 자주자주 내게 묻는말, "엄마, 이제 어디가 가고 싶어?"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너희들이랑 파리에서 차를 몰고 떠나 러시아를 횡단해서 블라디보스톡까지 와보는 거지만

이제 그 꿈은 접기로 했고, 너랑함께 라스팔마스를 한번 가보고 싶어."

라스 팔마스, 그곳은 아들의 아버지가 한세월 살던 곳, 우리 아들이 너무도 외로워야만 했던 그 세월들의 그 땅.

아들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가지 뭐~"

그애는 항상 그렇게 말한다. 가지 뭐~. 하지 뭐~ 그러지 뭐~

 

아들이 갔다. 늦은아침수저를 방금 놓고 왔다면서도, 내가 떠주는 밥그릇을 다 비우고 가는 아들.

아들이 그렇게 별안간 다녀가고 나면 난 한동안 꿈인가 싶은 것이, 멍~해지고, 하루가 더욱 허전해진다.

 

...하지 않은 척하며 사는것에 도사들이 된건지,

표정관리에 익숙해진 것인지, 우리는 서로서로 헤아리기만 할 뿐이다.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

 

그래, 우린 지난 시간들도 해피하다며 웃고 살았고, 지금도 서로서로 해피하다며 웃고 살고있고

앞으로도 해피~ 해피~를 염불처럼 입에 올리며 살게 될거란다.

아들아, 엄마의 하루하루는 원더풀데이야!!! 엄마 교실 칠판에 항상 적혀있던 Wonderful Day!!

 

아들 다녀간 날이면

주문을 외치자, 더욱 큰 소리로

'그라시아스알라비다'

 

'오두막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내버린 배  (0) 2015.02.23
탄천의 봄내음  (0) 2015.02.17
짧은 여행, 다녀올게요.  (0) 2014.12.10
동무랑 만나서  (0) 2014.12.09
하루가 화살같이  (0) 2014.12.09